북한은 할 만큼 했다. 탄도미사일인 무수단 발사 여부에 관계없이 북한이 한국 미국 일본을 공격할 수도 있는 위험한 집단임을 지구촌의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됐다. 김정은 집권 1년을 맞아 노동신문은 인공위성 발사와 3차 핵실험을 대표적인 치적으로 내세우며 ‘통쾌한 승리’라고 찬양했다. 젊은 김정은이 존재하는 한 외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규정한 장거리 로켓과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개성공단을 사실상 폐쇄한 북한의 조치는 문명사회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존엄’에 대한 충성심이 유별나지만 5만3000여 명의 일자리와 20만 명이 넘을 가족들의 생계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팽개칠 줄이야. 우리는 북한의 행동에 상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도 알게 됐다.
김정일은 도발을 하더라도 상황이 불리해지면 대화에 응하는 담담타타(談談打打) 전술을 애용했지만 김정은은 지난 1년간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했다. 그러나 북한이 놓친 게 하나 있다. 북한 지도자만 변한 게 아니다. 그가 대결할 상대가 모두 달라졌다. 새 대통령을 뽑은 한국도, 새 국가주석을 맞은 중국도 변했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10년 집권 출발선에 재를 뿌린 김정은의 비례(非禮)에 크게 기분이 상했다. 5년 전 국가부주석이 된 뒤 가장 먼저 평양으로 달려갔던 시진핑이 김정은과 접촉을 피하고 있는 이유를 북한은 헤아려 보았는가. 중국 관영언론까지 북한의 도발에 염증을 드러낸다. 중국 국민의 시각도 북한에 호의적이지 않다. 시 주석이 여론을 거스르면서 6·25전쟁 때 맺어진 중-북 혈맹관계에 매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워싱턴 불바다 협박’으로 북한의 도발은 미국의 발등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불이 됐다.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동맹국 한국에 대한 위협을 넘어 자국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밝혔지만 후퇴라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비정상적 행위를 수용해주면 과거의 관행을 되풀이하게 되는데 그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북 도발 불용(不容)은 변함없는 박 대통령의 키워드다. 박 대통령이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거나 양보하려 한다면 우리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됐든 북한은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북한이 앞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한다 해도 이미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으로 충분히 충격을 받은 한미는 겁을 먹는 대신 오히려 도발 불용의지를 굳힐 것이다. 북한이 무력도발을 감행한다면 이번에는 정권의 생사를 걸어야만 한다.
북한이 끝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한층 강화된 제재와 맞닥뜨리게 된다. 핵과 미사일을 만들었지만 외부의 압박은 더 강해지고 여전히 배는 고픈 상황을 북한 주민들이 언제까지 감내할 것인가. 남한이 주는 달러로 그동안 걱정 없이 살았던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실직의 고통 속에서 언제까지 ‘존엄’에 충성을 다할 것인가.
북한은 5월 영농철이 시작되면 군인들을 논밭에 보내야 한다. 길게 봐도 이달 30일 독수리 연습 종료 무렵에는 어쩔 수 없이 도발의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북한은 그런 상황에 몰려도 인민군의 강력한 무력과 젊은 지도자의 천재적 전략이 미 제국주의자들의 침공을 막아냈다며 선전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 그런다고 무슨 실익이 있겠는가. 북한이 도발카드를 휘두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국력은 소진되고 남한과 미국에서 청구할 계산서는 길어진다. 출구전략은 남한보다 북한에 더 절실하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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