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A가 팀의 기획안 발표를 망쳐놓았다. 선배들이 강조했던 부분에서 실수를 거듭한 것. 팀장은 A에게 당분간 발표를 맡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팀장은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A가 저녁 모임에서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팀장을 성토했다는 것이다. 팀장은 아연실색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은 오히려 그가 A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똑 부러지게 일하던 A가 일을 망쳐놓은 것도 의문이었고, 자기 잘못 때문에 팀 전체가 피해를 입었는데도 어째서 남 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A와 팀장의 성별을 짐작해보라. A는 여성이고 팀장은 남성이다. 두 사람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은 남성과 여성 특유의 언어 사용법 때문이다. 여성들에게는 ‘감정’이 우선이다. A의 입장에서는 자신도 속이 상했고 실수에 대해 사과했는데도 격려는커녕 ‘다시는 발표를 맡지 말라’는 야멸찬 말을 들었으니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언어는 ‘느낌’과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다. 반면 남성들의 언어는 ‘사실’이나 ‘명분’, ‘논리’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자와 여자는 이성에게도 동성의 기준을 적용해 말하면서 상대가 이해해주기를 기대한다. 여자를 명분으로 설득해봐야 효과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남자들은 모른다. 여자들이 느낌과 분위기를 열심히 전해도 남자는 그 속에 유용한 정보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감정과 이성을 대비시킨다. 이성은 우리에게 옳은 결정을 하도록 돕는다. 문제에 부딪힐 때 이성과 논리, 추론을 이용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반면 감정에 대해서는 그저 장애물일 뿐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근대 합리주의의 영향이다. 그러나 최신 과학에 따르면 감정은 열등하지 않다. 두려움 같은 감정은 이성보다 빨리 문지기 역할을 해주어 우리를 위험에서 지켜준다. 사랑이나 믿음 같은 감정은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또한 사람이 이성적 선택만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례가 다양한 분야에서 나온다. 예컨대 사람들의 구매행위를 분석해보면, 겉보기에는 정보가 이성적 판단을 거쳐 구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때그때의 감정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장은 때로는 차가운 이성보다 럭비공처럼 불규칙한 감정에 의해 굴러가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마음뿐이 아니다. 우리 삶의 뿌리인 가정 역시 그렇다.
여성들은 직관과 감성에서 남성들에 비해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 입장에선 둔감한 남자들이야말로 이해 불가능한 종족일 수도 있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