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형준]‘우익’과 ‘극우’의 차이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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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일본인 친구 다나베 신이치(田邊眞一·49) 씨의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생일잔치 참석은 약 20년 전 대학 시절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는 일본의 사회와 문화를 기자에게 설명해주는 길잡이와도 같은 친구다.

2일 도쿄(東京) 에비스(惠比壽) 전철역 인근의 한 주점. 오후 7시에 맞춰 가니 벌써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참석자는 50명으로 늘었다.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그의 인맥은 폭넓었다.

다나베 씨는 “소개의 시간을 갖겠다”고 하더니 한 명 한 명 참석자를 일으켜 세워 자신이 직접 소개했다. 그 후 서로 원 샷. 기자의 차례가 됐다. 내심 어떻게 소개할지 궁금했다. “이 녀석은 한국에서 온 동아일보 기자입니다. 일본 구석구석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뭐, 생각의 차이도 있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는 놈입니다.”

맞다. 그와 기자는 생각의 차이가 꽤 크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열렬한 지지자다. 영토 문제에 있어선 양보하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는 돈벌이를 위한 직업여성인’이라고 생각한다.

기자와 시각이 다르지만 그래도 말이 통한다. 예를 들어 위안부 문제. “위안부들의 돈벌이가 괜찮았다는 기록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속았거나 돈에 팔려 위안부가 됐다. 이는 분명 불법이다”라는 기자의 주장에 다나베 씨는 고개를 끄덕인다.

종합하자면 그는 ‘우익’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 과거처럼 군사적, 경제적으로 강해지길 바라지만 과거 역사에 대해 솔직히 잘못을 인정한다. 상당수 일본인이 다나베 씨와 같은 우익이다. 이들은 극우와는 다르다.

‘재일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 등 결이 다른 극우는 과거 역사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본을 자랑스러워하며 무조건적으로 외국인을 배척한다. 특히 한국인과 중국인을 증오하듯 배척한다.

지난해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을 때 그들은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집회를 열며 “한국인들은 일본을 떠나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4일 오사카(大阪) 집회에선 “조선인 여자는 강간해도 괜찮다” “조선인을 죽이자”고 외쳤다. 도를 넘어도 너무 넘어섰다.

‘극우’의 특징인 셈이다.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되는 언론의 특성상 재특회의 극단적인 주장은 자주 신문에 소개된다. 하지만 재특회 회원 혹은 그들을 지지하는 일본인은 극소수다. 재특회 회원 1만 명을 릴레이로 인터뷰한 적이 있는 프리랜서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 씨는 “일본 사회에서 1%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우익일까 극우일까. 많은 한국인들은 아베 총리가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 극우의 발톱을 드러낼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일본 정계에선 “아베 총리는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에 중국은 몰라도 한국과의 관계는 꾸준히 좋아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고 한다. 아베 총리 역시 건전한 우익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참고로 다나베 씨는 생일잔치 중반 무렵 술이 거나하게 취했다. 다른 사람들이 한잔 마실 때 50잔을 마셨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런 솔직한 모습에 참석자 모두가 믿음을 보냈다. 철저히 국익을 따져야 하는 국가 간 관계에선 한 측이 다나베 씨처럼 일방적으로 손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손해 보는 게 오히려 더 큰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게 세상 이치이기도 하다. 올해 하반기 아베 총리가 과연 건전한 우익의 행보를 보일지 기다려진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우익#극우#아베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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