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후면 4·24 재·보궐선거를 통해 ‘무대’와 ‘찰스’의 정치권 복귀 여부가 확정된다. 여의도 주변에서 김무성은 무대, 안철수는 찰스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야당 시절부터 선이 굵은 돌격대장형이었던 김무성에게 ‘무성 대장’의 줄임말인 무대라는 별명이 붙은 지는 오래됐다. 찰스는 철수의 영어식 발음에서 왔다. 미국 명문대 유학 경력, 정장에 백팩을 둘러멘 그의 모습은 왠지 서구적인 이 별명과 어울려 보인다.
지난 대선의 주인공은 물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후보였던 박근혜와 문재인이었다. 그러나 대선 드라마에서 두 진영의 주연급 조연은 단연 김무성과 안철수였다. 두 사람은 후보 못잖은 ‘플레이어’로 주목을 받았다.
김무성은 대선을 두 달여 남기고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다. 당초 박근혜 캠프는 김무성 없이 출발했다. ‘좌장’이나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박근혜는 김무성을 선뜻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도 캠프도 구심점 없이 흔들리며 위기에 몰리자 결국 박근혜는 “선거를 총괄해 책임져 달라”며 그를 찾았다. 덩치 큰 초식공룡처럼 꿈쩍도 않던 새누리당 조직은 그가 총괄선거대책본부장으로 오면서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철수는 문재인과의 후보단일화 협상이 사실상 결렬되자 대선후보를 전격 사퇴했다. 선거를 도와달라는 민주당의 요청에 침묵과 잠행을 계속하다가 대선을 13일 앞두고서야 문재인과 만난 후 지원유세에 나섰다. 그러나 그리 적극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비판도 받았지만 민주당이 그에게 매달리는 모습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다시 보여줬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안철수는 결과도 보지 않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무성도 대선 승리 직후 “이제 제 역할이 끝났다”는 메모 한 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번에 두 사람의 정치 복귀 추진은 신속했다. 큰 체구 때문에 다소 둔해 보이는 김무성도, 우유부단하고 정치적 계산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던 안철수도 전광석화 같은 결단과 행동을 보여줬다. 2월 14일 법원에서 서울 노원병과 부산 영도 재·보선이 확정되자마자 김무성은 영도 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안철수도 먼저 측근을 통해 노원병 출마 의사를 밝힌 후 지난달 11일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지역구로 직행해 바로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화끈한 ‘싸나이’ 이미지의 김무성과 늘 신중한 모습의 안철수는 고향이 같은 부산이다. 두 사람은 이번 선거에서부터 영도에서 격돌할 뻔했다. 그러나 안철수가 지역구도에서 불리한 영도 대신에 야권 후보에게 유리한 노원병을 선택해 ‘빅 매치’는 무산됐다.
대선 당시 두 사람 간에는 가벼운 전초전이 있었다. ‘능력대로 내고 필요한 만큼 쓰자’는 안철수식 복지재원 조달 방안을 김무성이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주창하며 사용한 슬로건”이라고 비판하면서 먼저 ‘잽’을 날렸다. 색깔 논란이 일어나자 안철수는 “저같이 의사 출신에 사업해서 성공한 사람에게 빨갱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트위터에 “반사!”라는 글을 올려 가볍게 받아쳤다.
거침없는 말투의 김무성은 가끔 구설수를 겪기도 하지만 조심스러운 안철수는 말실수가 거의 없다. 1171억 원의 재산을 신고한 안철수와 비교할 순 없지만 김무성도 136억 원의 재산으로 정치권에선 재력가로 꼽힌다. 중진 김무성의 정치력과 경륜, ‘새 정치’를 앞세운 안철수의 참신함도 대조적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무기력한 정치권에 두 사람의 재등장은 지각변동의 신호탄이다. 김무성은 당장 새누리당 대표 1순위로 거론된다. 야권 개편의 중심엔 안철수가 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는 현재 여야를 통틀어 인지도 최상위권의 차기 주자다. 지난 대선에선 ‘킹메이커’였던 김무성도 상황에 따라 다음엔 ‘더 큰 꿈’을 노릴 수도 있다. 2017년 대선레이스 초반전의 여야 대표 주자는 일단 이 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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