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덧없이 사라져 간 자들의 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6일 03시 00분


펠릭스 누스바움, 유대인 증명서를 쥐고 있는 자화상, 1943년
펠릭스 누스바움, 유대인 증명서를 쥐고 있는 자화상, 1943년
때로는 한 점의 그림이 시대를 증언하거나 역사가 되기도 한다. 독일 태생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의 자화상에서 그런 사례를 발견하게 된다.

누스바움이 막다른 골목길에서 자신의 성과 이름, 얼굴 사진이 붙은 벨기에 국가가 발행한 외국인등록증명서를 손에 쥐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화가의 표정과 몸짓에는 무언가에 쫓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겁먹은 눈동자, 긴장된 입술 근육, 치켜세운 외투 깃, 경직된 손가락이 극심한 두려움을 말해준다. 화가는 왜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또 신분증을 제시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해답은 붉은색 도장이 찍힌 ‘Juif-Jood’라는 글자와 외투에 꿰맨 노란색 별이 알려준다.

‘Juif-Jood’는 유대인이라는 뜻이며 노란색 별은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강제로 달게 한 표지이다. 즉 자신이 벨기에로 망명한 유대인이며 나치의 박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자화상으로 알려준 셈이다. 화가의 뒤에 보이는 금이 간 벽면과 가지가 모두 잘려나간 나무, 하늘의 먹구름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말하며 먹구름 사이로 보이는 푸른빛과 담장 너머 가지에서 피어난 꽃은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암시한다.

누스바움의 자화상은 홀로코스트의 상징인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그림으로 보는 것 같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 은신처에서 발각되어 강제수용소에서 살해당한 희생자, 폭력의 잔인함을 한 사람은 그림으로, 다른 한 사람은 일기로 증언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것도 똑같다.

‘우리를 죽이려고 다가오는 점점 더 커지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수백만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어. 그러다가도 하늘을 보면 모든 게 다시 좋아질 것이고, 이 괴로움도 끝이 나고 평화가 다시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 들곤 해. 그때까지 나는 희망을 소중히 간직할 거야.’(‘안네의 일기’ 중에서)

오늘날 누스바움의 자화상은 반전(反戰)의 아이콘이 되었다. 하늘나라에 간 화가는 알고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속죄하는 마음으로 독일 오스나브뤼크에 있는 ‘펠릭스 누스바움 미술관’을 방문하고 있다는 것을.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누스바움#Juif-Jood#유대인 증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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