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해 중국에 숨어있던 2000년대 초반, 영화 ‘쉬리’를 우연히 보고 놀라움과 전율을 함께 느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영화 속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경찰특공대를 저 죽이고 싶은 만큼 죽이며 날아다니는 장면이었다. 전혀 가능하진 않지만, 만약에 북한 영화에서 북파공작원을 그렇게 그렸다간 그 감독은 3대가 멸족할 것이 뻔하다. 이런 영화를 만든 감독도 대단하지만, 그런 불편한 장면을 앉아서 봐주는 한국 관객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 한국 사회의 자유를 읽었다.
이후 한국 영화를 수백 편 봤지만 지금 돌아봐도 쉬리는 대단하다. 마치 아벨과 카인처럼 핏줄과 죽음이 공존하는 남북관계를 잘 담아냈다. 이는 이후 북한을 소재로 삼아 성공한 영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코드이기도 하다.
쉬리를 보면서 가장 전율했던 순간은 특수8군단 소좌 박무영으로 열연한 최민식이 국정원 요원 한석규에게 침을 튀기며 울부짖을 때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니들이 한가롭게 그 노래를 부르고 있을 이 순간에도 우리 북녘의 인민들은 못 먹고 병들어서 길바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어. 나무껍데기에 풀뿌리도 모자라서 이젠 흙까지 파먹고 있어. 새파란 우리 인민의 아들딸들이 국경 넘어 매춘부에 그것도 단돈 100달러에 개 팔리듯 팔리고 있어. 굶어 죽은 지 새끼의 인육마저 뜯어먹는 그 에미, 그 애비를, 너는 본 적이 있어? 썩은 치즈에 콜라 햄버거를 먹고 자란 니들이 그걸 알 리 없지.”
놀랐다. 치즈에 콜라를 먹고 사는 작가가 쓴 대본 같지 않고, 햄버거를 먹고 사는 배우가 하는 연기 같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 기자로 산 지만 햇수로 12년째. 북한과 탈북자들을 취재하다 보니 늘 애통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에 잠겨 있다. 작년 봄에도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되는 탈북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한 달 넘게 노력했지만 끝내 구하지 못했다.
지금 북한은 12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탈북자도 여전히 팔려가고 잡혀가고 죽어가고 있다. 내 마음에는 10년 넘게 묵힌 분노가 꽉 차있다. 연기엔 소질이 없지만 박무영의 울부짖음만큼은 어느 배우보다도 더 잘할 것 같다. 북한을 바라보며 속으로 백 번, 천 번도 더 넘게 부르짖어 왔기 때문이다.
만약 영화가 아닌 현실에 박무영이 존재한다면 그는 서울에서 목숨 걸고 싸울 이유가 전혀 없다. 그가 정작 멱살을 움켜쥐고 성토해야 할 대상은 모두 평양에 있기 때문이다.
“니들이 전쟁 놀음, 핵 놀음 할 때 지금도 길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는 아이들이 전국에 널렸어. 새파란 우리 인민의 딸들과 누이들이 중국에 스스로 매춘부로 팔려가고 있어. 덴마크산 베이컨에 이란산 캐비아를 먹고 자란 니들이 그걸 알 리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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