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정훈]김승연 실형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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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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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사회부 차장
박정훈 사회부 차장
한화 김승연 회장은 수감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앓아온 조울증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뭘 잘못해서 여기 와 있는 건가.’ 눈물이 얼굴을 뒤덮었다. 조울증도 악화됐다. 강한 약을 처방하자 부작용이 생겼다. 몸무게가 25kg이나 늘었다. 폐 기능도 급속하게 떨어졌다. 헛것이 보여 걸핏하면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가슴 깊이 박힌 응어리가 그렇게 터져 나왔다.

옥살이 전만 해도 한화그룹은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었다. 김 회장은 지난해 5월 이라크로 날아가 80억 달러짜리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따냈다. 내전으로 폭격이 계속돼 이라크 총리가 귀국을 권했지만 김 회장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현장으로 갔다. “내가 폭탄을 무서워하면 직원들이 어떻게 공사하겠냐”며 돌아가자는 임원을 꾸짖었다.

그런데 검찰이 목을 조여 왔다. 발단은 비자금이었다. 2010년 5월 한화증권 전 직원은 김 회장이 회사 돈을 빼돌렸다며 차명계좌 5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사건은 그해 8월 서울서부지검에 배당됐다. 한화는 김 회장의 차명계좌 63개를 검찰에 제출하며 ‘선대 회장의 유산’이라고 밝혔다.

회사 돈 빼돌린 게 나오지 않자 수사는 배임으로 방향을 틀었다. 배임은 ‘전가의 보도’로 쓸 수 있는 카드였다. 칼집을 떠난 검(劍)은 벨 것이 필요했다. 13차례에 걸쳐 37곳이 압수수색됐다. 임직원 350여 명이 소환조사를 받았다. 6개월 가까이 계속된 ‘먼지털이’에 경영도 엉망이 됐다. 김 회장은 검찰에 출석하며 “좀 심한 것 아니냐”고 했다.

검찰은 김 회장이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을 겪던 위장 계열사 두 곳에 부동산을 헐값 매각하고 다단계로 합병시킨 뒤 유상증자 하도록 지시해 회사에 3000억 원의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화는 이들 회사에 지급보증과 자금지원으로 9000억 원 이상을 써 부도가 나면 그룹 전체가 타격을 입을 처지였다. 결과적으로 구조조정은 성공했고, 그룹도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검찰은 이 구조조정에 불법이 있었다며 김 회장에게 책임을 물었다. 검찰은 부인했지만 별건수사(특정 혐의 입증이 어렵게 되자 다른 사건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것) 논란이 컸다. 임직원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되면서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도 거셌다.

궁지에 몰린 검찰을 도운 건 대선 정국에 불어닥친 ‘경제 민주화’ 바람이었다. 재판부는 여론을 주시했다.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김 회장은 항소심에서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피해가 회복됐고, 회사를 위한 경영적 판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형을 유예할 수 있었지만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했다.

지도층 범죄를 엄벌해야 사회 기강이 바로 선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황제적 권력으로 사익을 탐하는 총수라면 무기징역으로 격리시키는 게 국익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김승연 배임’은 경제 민주화의 본질과 무관한 사건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가 없는 성공한 구조조정이었고 개인적 이득이 없었지만 과거의 불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했다. 죄질에 상관없이 재벌 총수를 감옥에 보내는 게 사법정의라면 번지수가 한참 잘못됐다.

검사의 공명심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재벌을 응징해야 출세도 쉽다.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판결하는 판사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별로 없다. 요즘 같은 때 재벌 총수를 풀어줬다가 어떤 욕을 먹을지 모른다면 판사가 아니라 바보다. 대법관을 꿈꾸는 판사라면 흑(黑)역사를 만드는 게 부담일 수 있다.

2년 6개월 동안 김승연 회장과 한화는 난도질됐다. 이라크 총리가 구두로 약속한 100억 달러 공사도 물거품이 되고 있고, ㈜한화 주가도 30% 넘게 폭락했다. 검찰의 칼춤과 법원의 포퓰리즘에 대한민국 10위 그룹인 한화는 지금 벼랑 끝에 섰다. ‘김승연 실형 판결’은 검찰과 법원 후배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돼야 한다.

박정훈 사회부 차장 sunshade@donga.com
#한화#김승연#비자금#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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