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판춘문예를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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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판춘문예 장원으로 당선된 ‘2011년 묘한 첫 만남’의 주인공 유봉이와 글쓴이. 유봉이의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 사진. 네이트판 캡처
2013년 판춘문예 장원으로 당선된 ‘2011년 묘한 첫 만남’의 주인공 유봉이와 글쓴이. 유봉이의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 사진. 네이트판 캡처
‘판춘문예 쓰고 있네∼.’

포털사이트 네이트 판(pann.nate.com)에서는 이런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네이트 판은 누리꾼들이 글을 올리는 게시판이다. 종류별 연령별 상황별로 다양하게 나뉘어 있다. 예를 들어, 10∼50대의 연령별로 자기 연령대에 맞는 코너를 골라 들어갈 수 있다. ‘해석남녀’ ‘사랑해도 될까요’와 같이 사랑과 이별에 대한 코너는 역시 관심이 높다. (내가 본) ‘개념 없는 사람들’을 올리는 코너도 있고, 직장생활의 애환을 털어놓는 공간도 있다.

법칙으로 정해 놓지는 않지만, 판에 올라오는 글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이야기’다. 그래서 반응이 더 뜨겁다. 남의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표독스러움에 함께 분노하며, 된장녀 여자친구의 뻔뻔한 이야기에 공분한다.

누리꾼의 조회수가 높거나 댓글이 많이 달리는 글들은 메인화면에 뜨게 된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하는 장면을 누리꾼이 직접 찍어 ‘○○녀’라고 판에 올려 크게 반향을 일으킨 적도 많다. 이른바 ‘지하철 막말녀’ 같은 경우다.

하지만, 자기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글들 중 일부는 너무 작위적이어서 정말 진실인지 의심스러운 경우도 있다. 누리꾼들은 “다른 이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거나, 작가 지망생 중에 일부러 지어낸 이야기를 올려놓고 좋아하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한다. 거짓말로 지어 냈으면서 자기 이야기라고 하는 글을 놓고 누리꾼들이 비꼬는 의미로 ‘판춘문예 쓰고 있네’라고 한다. 신인작가들의 등용문이 되는 ‘신춘문예’와 네이트의 ‘판’을 합친 것이다.

네이트 측은 아예 역발상을 했다. 제1회 전국 판춘문예 온라인 글짓기대회를 연 것. 주제는 ‘첫 만남’이었다. 3월 한 달간 응모작을 받은 결과 1500편의 글이 접수됐다. 이 중 댓글이 100개 넘게 달리고, 심사위원들의 내부 심사를 거친 30편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 글들의 조회수는 총 40만 건에 달한다. 주최 측은 글이 진실인지 픽션인지는 구별하지 않았다. 남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쓰기 능력만 본 것이다.

주제가 ‘첫 만남’이어서 그런지 역시 첫사랑과 관련된 글이 많았다. 경주로 간 대학교 첫 수련회(MT) 때 만난 복학생 선배에 대한 짝사랑의 마음을 담은 ‘나의 청춘에 당신이 물들다’가 2등이었고 ‘고등학교 시절을 흔들었던 첫사랑 영어과외 선생님’과 ‘혼자 떠난 통영 여행에서 만난 프랑스인’이 각각 3, 4등을 차지했다.

장원은 진짜 경험담이 차지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도쿄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30대 남성이 불안감과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고양이 ‘유봉이’를 키우면서 시작된 고양이와의 동거 이야기다.

“역에서 그 아이(고양이)를 기다리는데 그 긴장감이란. 설렘보다는 내 인생에 처음인 묘한 만남이라 무척 기대도 되더군요. 그렇게 그 아이가 오고 처음으로 아이 콘택트를 했는데 빨려 들어가 헤어나질 못할 정도의 깊고 푸른 눈빛에 예상보다 너무나 작은 신비로운 아이였습니다. 태어난 지 만 3개월이 지나서 어느 정도 크지 않을까 했는데 너무나 작고 울음소리도 들릴락 말락 남자아이답지 않은 가는 미성에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이런 생명체가 있을까…(중략).”

사랑스러운 고양이 사진들과 함께 기록된 그의 담담한 생활 이야기에 누리꾼들이 큰 호응을 보였다. 후속 이야기가 궁금한 누리꾼들 덕분에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야기를 연재 중이다. “역시 감동적인 글은 진솔함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평이 많다.

이번 판춘문예에 참여했던 한 누리꾼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일기장에다 쓰고, 집 컴퓨터에만 저장해 놓았던 나의 글들.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잊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사람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1시간이 지났지만 조회수는 30. 6시간이 지난 뒤에 조회수는 8000이었지만, 호응한 사람은 3명에 불과했습니다. 부끄럽고, 창피했지만 혼자만 숨겨 보았던 글을 8000명이나 읽어줬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앞으로 생업과는 별도로 계속 글을 쓸 것입니다. 다음번에는 좀더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도록….”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네이트 판#판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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