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나 회사 그만둘 거야. 팀장한테 사표 던져버릴 거야.” B: “대출금은 어떻게 갚으려고? 학자금 대출, 남아 있다며?” A: “지금 그게 중요해?”
(대화2)
A: “나 내일 사표 낼 거야.” B: “무슨 일 있었어? 팀장이 성질 부렸어?” A: “아무튼 내일 그만둘 거야.” B: “정말 그만두려는 거야?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나하고 상의도 없이….” A: “지금 하고 있잖아.” B: “이게 무슨 상의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대화1)에서 A는 여자이고 B는 남자다. 여자는 남자에게 위로를 바랄 뿐, 정말로 회사를 그만두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말을 이미 정해진 사실로 받아들여 ‘대출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묻는다. 위로를 바라던 여자는 남자의 반응에서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대화2)에서는 A가 남자이고 B가 여자다. 남자는 마음을 굳히고 여자에게 사실을 밝힌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자는 자기 방식으로 위로하려다가 남자의 결정에서 자신이 소외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한다.
옥스퍼드대의 로빈 던바 교수는 인간의 언어가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영장류의 ‘털 손질 해주기’에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침팬지들끼리 서로 털을 골라주는 ‘그루밍(grooming)’에서 언어가 탄생했다는 것.
한쪽이 털을 골라주면 다른 쪽도 그에 보답해준다. 기분 좋은 ‘손길의 주고받음’을 통해 친밀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인간의 경우, 구성원의 수가 워낙 늘어나 그루밍으로는 골고루 친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바람에 목소리를 이용한 의사전달이 늘어 언어로 발전하게 됐다는 논리다.
그루밍의 원형을 많이 유지하고 있는 쪽이 여성들의 대화다. 그들의 대화는 그루밍처럼 ‘주고받기’의 연속이다. 한쪽이 자기의 감정을 전하면 상대 쪽에서도 맞장구를 쳐주는 식으로 번갈아 그루밍을 해준다. 여성들이 대화를 통해 원하는 것은 그루밍이다.
남성 간의 대화에선 그루밍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직까지 본능이 남아 있다는 흔적이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그렇다. 호의적인 댓글을 달아주면, 상대도 기분 좋은 댓글로 보답을 해준다. ‘그루밍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얼굴도 모르는 팔로어 또는 친구들과 사회적 그루밍을 주고받는 셈이다. 그런데 그 정도 정성이면 가까이에 있는 아내 혹은 여자친구, 여자 동료와의 대화 그루밍 역시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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