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송중동 빗물 체류지 펌프장 옆 지하 저수창고에 9세 소년이 빠졌다. 저수창고 위를 덮고 있는 세 개의 철판 위에서 놀다가 철판이 구부러지는 바람에 7m 깊이의 어두운 저수창고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집에 가자”며 손을 잡아끌던 누나(11)마저 함께 추락했다. 누나는 동생을 안은 채 목까지 차오르는 오물이 가득한 물속에서 50분을 버틴 끝에 구조됐다.
이 사실이 동아일보에 보도(13일자 10면)되자 많은 사람들이 어린 누나의 지혜와 침착함, 남매의 용기에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그러나 남매의 아름다운 우애와 별개로 이 사건은 행정당국이 위험 시설물을 얼마나 허술하게 방치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일이었다.
사고가 난 지 열흘이 흐른 21일 취재팀은 현장을 다시 찾았다. 남매가 빠진 지하창고 덮개의 구멍은 임시로 두꺼운 철판을 가져다 막아 놨다. 하지만 원래 덮개로 쓰였던 나머지 두 개의 얇은 철판은 여전히 교체되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저수창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방치돼 있던 빗물체류지 펌프장 울타리의 ‘개구멍’은 보수돼 있었다. 하지만 철제 울타리의 가장 높은 곳은 132cm지만 가장 낮은 곳은 97cm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쉽게 넘을 수 있는 높이다. 울타리 주변에는 ‘위험’하다는 경고문조차 여전히 없다. 이 펌프장은 어린이 놀이터와 맞닿아 있다.
행정당국의 부실한 관리가 끔찍한 사고를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고한 사고였는데도 관할 행정기관인 강북구는 사고의 책임을 남매와 부모 탓으로 돌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18일 만난 강북구청 치수방재과의 한 직원은 “철부지 아이들이 울타리 사이의 ‘개구멍’으로 들어간 건 남의 집 담장을 넘어간 셈이다. 부모가 보호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구청의 해당 시설물 관리 담당자는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3번씩 점검을 나갔다. 겨울에는 수시로 펌프장을 들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고가 날 때까지 개구멍에는 어떤 보완도 이뤄지지 않았고 아이들은 수시로 펌프장을 드나들었다. 사고 현장 부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 씨(52)는 “아이들이 개구멍이나 울타리를 넘어가 펌프장에서 논다는 사실을 구청에서도 알고 있었는데 방치해 왔다”고 말했다. 19일 사고 현장에서 만난 이 지역 동주민센터의 한 직원은 “내 자식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구청이고 뭐고 가만 안 뒀을 것”이라고 했다.
구청 직원의 말대로 아이들은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철저한 관리를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사고 책임을 미루려는 태도라면 제2, 제3의 어린이 안전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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