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개발은행(ADB)이 최근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아시아 주요 11개국 가운데 싱가포르와 함께 최하위 수준으로 전망했다. 세계적 회계법인 언스트앤드영(E&Y)도 어제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2.2%로 크게 낮췄다. 컨설팅회사 매킨지가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보고서를 내 ‘한국 경제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한 지 며칠 안 돼서다.
실물 경제는 곳곳에서 비명이다. 기업들의 1분기 실적 발표가 시작된 뒤 GS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어닝 쇼크(예상보다 나쁜 기업 실적)’에 영향을 받아 우량 건설업체 15개사의 시가총액이 열흘간 4조5000억 원 증발했다. 세계적 불황의 여파로 STX조선해양은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백화점들은 그제까지 봄 세일을 했지만 매출 신장률이 지난해에 크게 못 미쳤다. 이런 사례들은 한국 경제에 대한 분명한 경고음이다. 정부는 이 위기를 헤쳐 나갈 비장의 카드를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일본은 7년 만에 백화점 판매가 늘고 아파트 거래가 급증해 경기 회복 기운이 완연하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6∼7%의 성장률을 보인다. 유독 한국만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한의 도발 위협과 엔화 약세로 인한 수출 경쟁력 저하로 여건은 더 나빠졌다. 기업 실적이 줄줄이 악화하고 수출과 내수 전망이 모두 캄캄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한탄이 나오고 ‘5월 위기설’까지 떠돌고 있다. 보통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한가롭다. ‘4·1 부동산 대책’은 양도소득세와 취득세의 면세(免稅) 기준을 놓고 계속 오락가락해 도리어 거래를 막고 있다. 경기가 나쁠 때는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북돋아야 하건만 국세청은 부족한 세수(稅收)를 채우기 위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이겠다고 한다. 대기업들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어떻게 가닥을 잡을지 몰라 정부와 정치권 눈치를 보며 투자 계획을 미루고 있다.
경제 주체들에게 ‘한번 해보자’는 의욕이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알쏭달쏭한 ‘창조경제’에만 매달려 있을 때가 아니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피부에 와 닿게 규제를 풀라”고 했지만 부족하다.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총리 직속으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여하는 ‘산업경쟁력 회의’를 만들었다. 경제민주화도 좋지만 성장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