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의 소설 속 인생]세계와 인생을 압축한 더블린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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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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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타임지가 2000년을 앞두고 선정한 세계 명작선을 비롯해서 많은 서구의 문예지 등이 선정한 세계 명작선에서 단골로 1위에 오르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1922년 출간)는 너무 어려워서 일반 독자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작품으로 인식되어 있다.

사실 이 소설은 영문학자도 다년간 이 작품 연구에만 매달려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므로 방대하고 무궁무진한 이 소설의 내용과 의미를 이 작은 지면에 압축해서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글은 독자의 경외심과 공포를 조금 누그러뜨려서 진기하고 풍성한 문학적 향연장으로 인도하려는 작은 시도일 뿐이다. 필자가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문학사상 작가가 이만큼 공들여서 쓴 작품도 드물겠지만 또한 이만큼 작가가 독자에게 장난을 걸고, 즐거운 유희를 쏟아 내놓은 작품도 없으리라는 점이다. 이 작품이 독자에게 즐거운 보물찾기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이 작품은 근저에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를 깔고 있다. 고대 희랍의 도시국가 이타카의 왕이며 트로이전쟁의 용사 오디세우스는 신들의 분노를 사서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0년 동안 여기저기 표류하면서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경험을 한다. 조이스는 평범한 소시민인 한 중년의 광고대행업자가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 동안 더블린 시를 배회하면서 의식 속에서 오디세우스의 10년 경험을 재현하도록 한다. ‘율리시즈’는 희랍이름 오디세우스의 로마식 발음이다.

오디세우스에 해당하는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온전한 가장이 못 되어 시내를 배회하면서 진정한 귀가를 준비해야 한다. 스티븐 디달러스는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헤맨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쿠스처럼 진정한 아버지를 동경하다가 블룸과의 잠시간 만남에서 일시적이나마 충족을 얻는다. 블룸의 아내 몰리는 오디세이의 요부와 정절녀가 혼합된 인물이다. 이 외에도 여러 등장인물과 물체, 사건이 오디세이의 인물과 에피소드와 우회적인 대칭을 이룬다.

오디세우스의 유혹과 시련은 주로 블룸의 의식 속에서, 텔레마쿠스의 불안과 투지는 스티븐의 의식 속에서 재현된다. 그들의 의식이 고금의 문학, 음악, 역사, 신화, 신학, 철학, 과학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들고 사념의 범위가 고차원적인 것에서부터 저급한 것까지, 우주적인 것에서부터 사소한 것까지 포괄해 웬만한 교양인의 이해범위를 훌쩍 넘는 것이다.

조이스가 이 소설에서 사용해서 모더니즘의 특징적 기법이 된 ‘의식의 흐름’은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그 자체의 실시간 전사(轉寫)이기 때문에 앞뒤의 생각이 논리적 연관이 없어 보이고 문장이 끊기고 비틀리고 품사가 전용(轉用)되고 단어가 반 토막 나 버리거나 여러 개가 이어진다. 기발한 의성어, 의태어가 생성되고 신조어가 합성되고 다중(多重) 의미의 단어는 즉각 해체된다. 생각 속에 떠오르는 프랑스어 독일어 희랍어 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의 단어, 문장, 문단은 날것으로 삽입된다.

인간의 의식은 이렇게 비논리적으로 무질서하게 쏟아져 나오는 것이지만 조이스는 매우 정교한 틀을 사용해서 의식의 흐름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과 외적세계와의 관계, 인간의 지성과 감성과 육체의 상호작용을 총체적으로 드러내 준다.

조이스가 밝혀 준 인간 의식의 작동 방식은 프로이트가 발견해서 인류에게 선사한 ‘무의식’만큼이나 귀한 것이다. 의식은 논리나 이성과 무관하게 그 사람의 욕망과 죄의식, 강박관념, 호감과 반감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주인공인 블룸에게는 너무나 많은 것이 아내의 정부(情夫)의 이름, 차, 목소리, 표정을 연상시키고 죽은 아들과 아버지를 상기시킨다. 스티븐에게는 하찮은 물건이나 단어도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돌이키게 한다. 예술가의 자유와 비상을 위해 종교의 족쇄를 거부했기에 복종할 수 없었던…. 볼룸은 이 긴 하루의 편력을 통해 이제껏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던 여러 굴욕적 상황을 내면적으로 소화해 능동적으로 포용하게 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블룸의 아내 몰리가 한숨에 쏟아내는 40페이지에 걸친, 단 8문장의 독백은 시각적으로 독자를 질리게 하지만 사실 제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장이다. 자신에게 너무나 솔직한 이 생기 충만한 여인은 독자도 무장해제 시킨다. 그래서 보통 독자라면 마지막 장, 그러니까 뒷문을 통해서 이 소설에 입문하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하다.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04년 6월 21일 아침 8시부터 자정이 지난 새벽 2시 사이의 18시간이다. 더블린 시에서는 ‘Bloom's Day’로 명명된 매해 6월 21일에 여러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기념행사들이 열린다.

이 소설은 외설성 때문에 처음에 영국에서 발표되지 못하고 미국 잡지에 실렸다가 프랑스에서 처음 출판되었고, 곳곳에서 몰수되고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었다. 이 작품에 풍성한(?) 외설적인 부분은 대단히 도색적이면서 기막힌 지적인 유희이기도 하다.
● 율리시즈 줄거리는

임시직 교사로 일하는 스티븐 디달러스가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데 불청객 동거인인 벅 멀리건과 멀리건의 친구 헤인즈는 그의 음식을 먹으며 그의 신경을 긁는 말을 늘어놓는다. 스티븐은 자기 집에서 밀려나는 형국이 될지언정 더이상 그들에게 자기 인생을 침해당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린 생도를 개별지도하면서 자신이 어렸을 때 학교에서 겪은 어려움들을 기억한다. 그날이 반(半)공일이어서 강의를 끝내고 홀가분하게 해변을 걸으면서 우주와 영혼, 윤회, 인간의 언어 등에 대한 여러 가지 명상을 한다.

4장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은 유대인으로 광고대행인이다. 그는 여러 해 전 어린 아들을 묻고 나서 아내와의 부부생활이 끊어진 사이여서 아내의 계속되는 부정을 묵인할 수밖에 없다. 아내에게 아침을 차려 바치고 자신도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와서 우체국, 성당, 약국, 목욕탕을 들렀다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신문사에 들러서 광고를 발주하는 문제로 경영자에게 수모를 당하고 간이식당 겸 선술집에 가서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고, 광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국립박물관을 둘러보고 국립도서관에 들러서 스티븐이 친구들에게 셰익스피어에 대한 자기의 지론을 펴는 것을 듣는다. 그러고 나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술집에 가서 성명 미상의 애국시민과 정치와 인종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해질 녘의 해변가에서 거티라는 젊은 처녀를 멀리서 보고, 서로 눈길만 교환하는 가운데 양쪽 다 서로를 대상으로 진한 성적 상상을 한다.

그리고 친구의 부인이 난산으로 고생하고 있는 산부인과 병실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스티븐과 그의 친구들을 만나서 같이 술집으로 가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한 스티븐이 유곽으로 가는데 보호해주고 싶어서 따라간다. 유곽에서 포주가 시키는 놀이를 하고, 스티븐이 군인 두 사람과 몸싸움을 하다가 쓰러지니 부축해 일으켜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다.

블룸은 스티븐에게 부성적 감정을 느껴서 자기 집에서 자라고 하지만 스티븐은 사양하고 떠난다. 블룸은 아내에게 다음 날 아침부터는 그녀가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곯아떨어진다. 몰리는 남편의 태도와 말에서 자기네 부부생활에 올 변화를 감지하고 자신의 남성 편력과 자신과 세상에 대한 모든 생각을 긴 내적 독백으로 쏟아내고, 남편에게 청혼을 받던 날의 벅찬 환희를 떠올리며 결혼식에서의 서약 “Yes I will yes”를 되뇌며 긴 독백을 끝낸다.

※다음 회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 소개됩니다.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율리시즈#더블린#제임스 조이스#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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