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한 경제부처의 차관을 환송하는 조촐한 고별 만찬에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능력 있고, 성품도 좋은 퇴임 차관의 금의환향을 기원하며 덕담을 건넸다. 그중 한 명은 “곧 장관으로 돌아와야 하니 건강 잘 챙기시고, 로펌은 절대 가지 마시라”고 이야기해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로펌에 몸담았던 전직 관료들이 장관에 임명돼 전관예우가 한창 논란이 되던 때였다. 그 당부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 차관은 서울 시내의 한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새 정부 출범으로 전 정권 마지막 장차관들이 공직을 떠난 데 이어 최근 정부부처의 1급 인사가 단행되면서 ‘전직(前職)’ 대열에 합류하는 관료가 늘어나고 있다.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하지만 1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그렇지 않다. 국세청에서는 1급 3명이 모두 사표를 냈다. 다른 부처에 비해 고위직이 갈 곳이 많은 편인 기획재정부에서도 1급 6명 중 2명이 자리를 잡지 못했다.
몇 살 때 행정고시에 붙었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1급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는 관료들은 대부분 50대 초반이다. 은퇴하기에는 너무나 젊은 나이다. 화려한 ‘스펙’도 썩히기에 아깝다. 퇴직 후 로펌에 몸담았다가 전 정권에서 장관에 임명된 한 인사는 “30년 넘게 공직생활 하다가 퇴임하고 나면 처음 한두 달은 여행도 하고, 시간이 잘 가는데 그 뒤에는 딱히 갈 데가 없고 집에 있기도 눈치 보인다. 그때 어디서 오라고 전화가 오면 뿌리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 교수는 ‘인간은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한계로 인해 그 상황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을 한다’고 했다. 퇴직한 관료들은 앞으로 어떤 자리가 주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전직 관료들이 선택하는 로펌이나,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고문으로 일했던 무기중개업체 역시 당시 상황에서는 가장 만족을 주는 대안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선택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새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임기가 10개월 남은 상태에서 용퇴한 김 전 위원장은 최근 금융연구원에 둥지를 틀었다. 농협경제연구소장을 하다가 금융위원장으로 옮기며 연구기관을 떠난 지 2년여 만에 다시 연구기관에 되돌아온 셈이다. 농협경제연구소장 시절에는 승용차, 비서와 억대 연봉을 받았지만 초빙연구위원 신분인 지금은 연구실과 ‘소정의 보수’를 받는 게 전부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전직’이 된 고위 공직자들은 언제든 현직으로 화려하게 컴백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전직 상태에서 내린 선택 때문에 현직으로 복귀하는 길이 막혀 능력과 경력이 사장된다면 개인에게도 불행이고, 국가로서도 손실이다.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헷갈리면 만족을 덜 주는 대안을 선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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