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알랑가 몰라 과학문화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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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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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초중고교 과학실에 가보면 가끔 당혹스럽다. 학생 수가 적어 폐교가 걱정스러운 외딴 지역의 학교에도 과학실은 상당히 잘 갖춰져 있다. 교육부가 오랫동안 의욕적으로 추진한 학교 현대화사업 덕분이다.

현대화된 과학실에 놓인 기자재는 대체로 엉성하고 조악해 보인다. 과학실은 첨단으로 진화했지만 기자재는 1970, 80년대에서 멈춘 듯하다. 그런데 비커 시험관 저울 같은 기자재 가격은 꽤 비싼 편이다. 중국산일 텐데 왜 그리 비쌀까? 학교는 왜 이런 조악한 기자재를 비싼 가격에 두말 않고 사는 걸까? 알랑가 몰라∼

학교 건물을 민간투자임대(BTL) 사업 방식으로 짓기 때문이다. 학교는 기업의 자금으로 건물을 지어 임차해서 쓰고, 기업은 그 대가로 학교에 들어가는 기자재를 납품할 권리를 갖는다. 기업은 싼 기자재를 비싸게 공급해야 이윤이 많이 남는다. 따라서 과학 기자재의 품질에 대해서는 학교도 기업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과학을 좋아하는 교사와 학생들만 애가 탈 뿐이다. 알랑가 몰라∼

과학실험 시간에 사용하는 교구를 보면 기가 막힌다. 종이 비닐 우드락 고무줄 나사 같은 간단한 부품들이 비닐봉지에 들어 있다. 이른바 ‘봉다리 키트’다. 이름도 없고 상표도 없고 제조회사도 없다. 품질표시는커녕 조잡한 설명서라도 들어 있으면 다행이다. 플라스틱 사출물은 비싸서 엄두도 못 낸다. 출처불명의 ‘봉다리 키트’가 어떻게 교실로 들어왔을까? 알랑가 몰라∼

과학 기자재와 교구는 주로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운영하는 학교장터를 통해 입찰에 부쳐진다. 최저가 입찰은 ‘묻지마 품질’을 ‘보증’하게 마련이다. 가격을 낮추다 보니 지식재산권은 의미가 없다. 서로 베끼고 모방하고 복제하고 카피하다 보니 출처불명의 키트가 교실에 만발하고 있다. 교육부가 실험 예산을 아끼기 위해 불법 복제를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알랑가 몰라∼

여느 과목과 달리 과학은 실험이 중요하다. 교과서보다 실험에 더 많은 예산을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과학교과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개발하기 시작한 뒤로 다른 과목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과학실험은 아직 ‘봉다리 키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교과과정에 들어갈 만한 과학실험은 누가 개발하는가? 알랑가 몰라∼

과학 과목의 실험은 극소수의 열정적인 과학교사들이 선도한다. 새로운 실험을 개발하고 키트를 설계해서 수업에서 시험한 뒤 과학유통사를 통해 생산을 의뢰하지만, 대부분 원가를 맞추지 못해 아이디어 상태로 ‘증발’해 버린다. 과학유통사의 이윤에 간혹 학교 행정실이나 교장의 몫까지 떼고 나면 차라리 생산하지 않는 게 낫기 때문이다. 알랑가 몰라∼

학교의 과학실험을 ‘봉다리 키트’ 차원으로라도 지켜준 것은 영세한 과학문화벤처들의 희생 덕분이다. 과학교사와 함께 개발했든, 외국의 과학교육 전시회에 나온 것을 모방했든, 새롭고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교구를 싸게 공급한 것은 그들의 공이다. 알랑가 몰라∼

과학문화벤처들이 점점 도태되고 있다. 유통사의 가격 후려치기에, 학교의 은밀한 요구에, 정부의 무관심에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그나마 작년부터 학교의 실험 예산마저 줄어 ‘봉다리 키트’ 수업도 더 열악해졌다. 실험 예산을 무상급식으로 전용한 탓이다. 알랑가 몰라∼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와 과학기술부의 통합으로 새로운 과학교육을 기대했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교육부나 과학기술부는 물론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과학문화벤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 과제에서 곁불을 쬐면서 배고픔을 달래야 했다. 알랑가 몰라∼

정부는 ‘과학문화 창달’과 ‘일자리 창출’을 외치지만, 정작 그 주인공이 될 과학문화벤처는 아무런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단언컨대, 창의적인 과학실험이 죽은 교실에서 ‘미래 창조’는 없다. 알랑가 몰라∼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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