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저녁상을 차리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모임에 다녀온 아내는 화가 난 것 같았는데 남편으로서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아내는 약속 장소를 찾느라 얼마나 헤맸으며, 누가 무슨 계기로 그런 장소를 정했는지, 어떤 이가 일찍 도착했고 다른 이들은 얼마나 늦었는지 상세하게 말했다. 남편은 조바심이 났다. 왜 화가 난 것인지 궁금한데, 언제까지 ‘쓸데없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인내가 한계에 이르렀을 즈음에야 아내가 분노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남편의 방식대로라면 아내의 이야기는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오늘 만난 사람 중에 이런 이가 있었는데 되게 재수 없었어.”
여성들에겐 ‘말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남자에겐 ‘본론’만이 중요하겠지만 여성에게는 그날 일어났던 모든 일과 그것에 대한 자기 느낌 등 전부가 ‘본론’인 것이다.
가정의 위기를 발원지까지 추적하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와 여자가 마주 서 있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남성은 집이 ‘동굴’이 되어주길 원한다. 혼자 멍하니 앉아 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은 집이 ‘광장’이기를 바란다. 어울리며 많은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다. 서로에게 원하는 바가 모순 관계다.
이런 차이는 남성과 여성이 아주 오래전부터 제각각의 역할을 맡아 진화하는 과정에서 더욱 현격하게 벌어졌다. 여성은 거주지를 지키거나 먹을거리를 채집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배고픔이나 기쁨, 슬픔 같은 작은 변화에 민감하도록 진화된 것. 특히 아기에 관한 한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반대로 남성에게는 ‘중요한 것’ 하나만이 관심사다. 사냥에 몰두했던 결과다. 모처럼의 사냥감을 놓치고 나면 다음 기회라는 게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냥에는 ‘침묵의 규율’이 필요했다.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에도 드러난다. 남성은 하루에 2000∼5000단어를 사용하는 데 비해 여성은 하루에 6000∼8000단어를 쓰는 것이다. 문제 가정의 중심에는 대화를 거부당한 여성이 있다. 이야기를 충분히 풀어놓지 못한 여성은 좌절감을 느끼지만 대부분의 남성은 그런 감정적 아픔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상처를 더욱 후벼 놓는다. 통계청 조사 결과 가족관계에서 ‘아내에게 만족한다’는 남편의 비율은 71.8%에 이른 반면에 ‘남편에게 만족한다’고 응답한 아내는 59.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말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들어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남편에게 만족을 느낀다. 중간에 끊지 않으며 본론을 채근하지 않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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