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내 날개 밑에서 부는 바람

  • Array
  • 입력 2013년 4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빈센트 반 고흐, 자고새가 있는 밀밭, 1887년
빈센트 반 고흐, 자고새가 있는 밀밭, 1887년
황금빛 밀밭 위로 자고새(꿩과)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오른다.

그림에서 초여름의 햇살과 열기, 밀밭 사이로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일렁이는 바람의 감촉이 느껴진다. 심지어 새의 퍼덕이는 날갯짓 소리까지도.

이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린 화가는 뜻밖에도 광기의 화가로 알려진 반 고흐다.

고흐가 이런 서정적인 풍경화를 그렸다니. “진짜 고흐 그림 맞아?”라고 되묻게 된다.

그러나 그림을 자세히 살피면 고흐 화풍의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소용돌이 붓질, 줄무늬 붓질, 즉흥적이고 짧은 붓질 등 붓놀림이 독특하다. 황금빛 낟알과 파란 하늘, 노란 색조의 그루터기와 초록색 밀줄기의 보색 대비라든가 밀밭 사이로 보이는 강렬한 붉은 색점들(양귀비꽃)은 ‘역시나 고흐!’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결정적인 증거물은 밀밭이다.

고흐처럼 밀밭을 자주 그린 화가가 또 있을까?

고흐는 밀의 일생, 농부들이 씨 뿌리고, 재배하고, 수확하고, 노적가리를 쌓아두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풍경화에 담았다. 자살하기 직전에 그린 그림(까마귀 나는 밀밭)도 밑밭에서 그린 것이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소도 밑밭이다.

고흐는 왜 밀밭을 그토록 좋아했을까?

해답은 고흐의 편지가 말해준다.

‘사람이나 밀이나 똑같다는 것을 강하게 느낀다. 땅에 뿌려서 싹을 틔우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니? … 내게 있어 습작을 하는 일은 밭에 파종을 하는 것과 같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수확과도 같다.’

고흐에게 밀밭은 치유의 장소이기도 했다. 세상의 냉대와 가난, 정신병으로 고통을 겪었던 그는 ‘아내도 자식도 없는 나는 마냥 밀밭을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라고 편지에 속내를 털어놓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비상하는 저 자고새는 고흐 자신이리라. 밀밭은 상처 입은 고흐의 영혼이 돌아갈 둥지였으리라. 그래서 밀밭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까지도 사랑했던 것이리라.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고흐#밀밭#치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