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자는 집은 컨테이너이거나 달세를 주는 여관방, 자주 먹는 밥은 함바집의 백반이었던 그가 삼십년 객짓밥으로 얻은 만년 셋방에 곰팡이꽃을 피워놓고 밥상을 차려 기다렸다 늘 막막했던 그가 용돈까지 쥐어준다 ‘아무려면 혼자 사는 내가 낫지’가 그의 잠언 창을 열면 집 밖도 실내인 작은 집 소소한 몇 개의 반찬 냄새는 이 집을 벗어나지 못한다 빗방울은 허공에 걸린 거미줄을 튕긴다 이십오년 된 창고형 상가를 털어 칸칸이 허술한 담을 쌓고 그것을 아파트라 부르는 곳에 그가 살고 있다 그는 살 수 있었다 그가 만든 수많은 집들의 바깥에서만 빗방울을 견디는 거미줄, 오로지 가볍고 질긴 장력으로 살았던 탁음이 깊은 말라깽이 사내의 집 복도엔 그만그만한 사람들의 생이 얽힌 물발자국 발바닥으로 부르는 노동가, 따라 부르기 버거워 어떤 음계에서 나는 미끄러지고 만다
건축 공사장 컨테이너나 달세 여관방을 전전하던 그 사내, 삼십년 만에 드디어 ‘만년 셋방’ 거주자가 됐다. 그래서 처음으로 제 집에 밥상을 차려놓고 친구인 화자를 초대한 날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살면서 나이 든 이가 노숙의 공포에서 벗어난 형편이 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기쁘게 축하하러 찾아간 화자, 그러나 반찬냄새 진동하는 좁은 방이며 천장에서 벽으로 흘러내리는 곰팡이꽃이며, ‘창을 열면 집 밖도 실내인’ 듯 바투 옆집 담벼락이 붙어 있는 꼴이며, 마음이 먹먹해진다. 마침 비까지 주룩주룩 내린다. 열린 창밖으로 거미줄에 빗방울 튕기고. 거미들은 자기 집이나 짓고 살았지, 이 친구는 평생 수많은 집들을 짓는 일손이었건만 그 집들의 바깥에서만 살 수 있구나. 그러면서도 마음씨는 어찌 그리 곱고 넉넉한지! ‘아무래도 혼자 사는 내가 낫지’, 식솔을 거느린 화자한테 용돈까지 쥐여준다. 아, 당신이나 나나, 왜 이렇게 살지? 우리가 게을렀던가? 방탕했던가? 화자의 삐치고 미끄러지는 마음이 만져질 듯하다.
시 속에 비가 내리는 건 우연이 아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비 오는 날이 노는 날이다. 물론 급료는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비 오는 날이면 공(空)치는 날’인 것이다. ‘일용직 근로자의 날’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근로자의 날’에서도 소외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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