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을 보다 보면 조선시대는 그래도 손에 잡힐 듯하다. 겸재의 그림, 추사의 글씨는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고려시대로 가면 강한 이질감이 든다. 특히 고려 불화가 그렇다. 조선시대와는 달리 종교적 외양이 압도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선과 색이 너무 감각적이어서 모순된 결합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의 관음보살은 얼굴은 남성이지만 신체의 선과 옷은 대단히 여성적이다. 미술사학자 강우방 교수는 최근 낸 ‘수월관음의 탄생’이란 저서에서 수월관음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비교했다. 서양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 미켈란젤로의 조각과 라파엘로의 그림에 등장하는 성모는 중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진다. 그 성모는 나중에 비너스로 바뀌어 부르주아 가정에 걸린다. 성모가 숨겨진 비너스이듯이 수월관음을 통해 표현된 것도 실은 여성이다.
▷해외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우리 문화재가 많지만 그중에서 유독 국내에서 보기 힘든 것이 고려 불화다. 고려 불화는 전 세계적으로 160점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데 고려말 왜구가 약탈해간 것이 많다. 국내 소장품은 주로 해외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사들인 것으로 지금도 15점 안팎에 불과하다. 국공립박물관에는 한 점도 없다. 이런 희귀성 때문에 고려 불화는 발견될 때마다 큰 주목을 받는다.
▷고려 불화의 최고 전문가인 정우택 동국대 교수가 최근 일본 후쿠오카 현 조텐(承天)사에서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 1점을 발견했다는 소식이다(4월 30일자 본보 A1면). 대부분의 수월관음도에서 관음은 비스듬히 옆으로 반가좌를 튼 자세를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관음이 정면을 향해 앉은 채 오른 무릎에 오른팔을 올리고 왼손으로 바닥을 짚는 윤왕좌(輪王坐)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름다우면서도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다. 윤왕좌 자세의 수월관음도는 처음이라고 한다. 이런 귀중한 유산을 일본에 두고, 그것도 허락해줄 때만 간신히 봐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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