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내일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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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2일 03시 00분


딸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반드시 9시 뉴스를 챙겼다. 제 방에서 놀다가도 9시 뉴스를 알리는 시그널이 나오면 부리나케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왔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9시 뉴스의 후반부, 내일의 날씨를 보기 위해서였다. 날씨를 알아야 내일 유치원에 입고 갈 옷을 결정할 수 있으니 말이다.

딸은 어려서부터 잠들기 전에 언제나 옷과 양말, 머리핀과 머리띠 등을 색깔별로 코디해서 준비해두는 멋쟁이였다. 아침마다 늦잠자고 허둥대다가 대충 눈에 보이는 거 걸쳐 입고 뛰어나가는 엄마와 다르게 옷차림이 맘에 안 들면 결코 현관문을 나서지 않는 딸을 나는 야단치기는커녕, 오히려 이것저것 사다 주며 딸의 욕망을 부추겼다. 사실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수줍어하는 성격이 걱정이던 차에 유일하게 옷에는 욕심을 부리고 적극적이기에 그것으로나마 기를 살려주고자 맞장구를 쳤던 것이다.

하도 옷을 좋아해서 “옷쟁이”라고 부르며 놀리기도 했다. 대신 어린이날이든 생일이든 딸 아이 선물 아이템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무조건 예쁜 옷만 사주면 배시시 행복한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딸에게 다른 것은 절약해도 옷과 소품들은 열심히 사줬다.

공부만 잘하면 미래가 보장되던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은 ‘취업이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예습은 안 해도 내일의 의상은 꼭 챙겨야 하는 딸은 그저 그런 대학을 다녔고, 화려한 스펙도 쌓지 못했다. 단지 패션 감각은 괜찮은 편이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서울 강남의 대형 옷 가게에서 판매사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옷을 좋아하더니만 결국 옷 가게 점원으로 취직했다. ‘힘든 판매사원 일을 얼마나 하랴’ 생각했는데 웬걸, 우리 가족의 예상과 달리 아주 재미있게 꾸준히 다니더니 몇 달 후에는 그 옷가게 본사인 우리나라 굴지의 의류회사로 출근한다고 했다.

그 회사에 입사하기 위하여 일류대학 졸업에 훌륭한 스펙, 입사 후 신입사원 교육까지 지난한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정식사원이 되었다는 딸의 발표에 우리 가족 모두 깜짝 놀랐다. 게다가 가문의 영광을 이룬 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고마워요. 그동안 보고 자란 것이 많아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안목이 생겼나 봐요. 회사 사람들이 나보고 옷에 대한 센스가 있다고 해요.”

곧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내일의 날씨를 챙겨 보던 유치원 꼬마가 훗날 의류회사 직원이 될 줄은 짐작도 못했듯이 만약 나의 아이가 유난히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혹시 그것이 아이의 미래에 결정적 단서가 될지 모른다.

내일의 날씨는 예보가 가능하지만 어느 구름에 비 내릴지 모르는 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다. 북돋워주고 기다려주자.

윤세영 수필가
#유치원생#미래#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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