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 중에 ‘아버지 세대가 부럽다’는 이들이 은근히 많다. 주말이면 기다렸다는 듯 몰아치는 아내의 온갖 요구에 짜증을 내며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아버지 세대의 남성들은 휴일에 낮잠을 자거나 신문을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가장으로 존중을 받았다. ‘남자다움’이 당당하게 인정받는 세대였다.
‘남자답다’는 것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남자의 신성한 의무와 상통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여자와 시시콜콜 따지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한 경상도 사나이들처럼, 입을 꾹 다물고 아내의 폭포수 같은 대화 요구에 신문을 들어 차단막을 친다는 뜻으로도 전해진다.
‘남자답다’는 의미의 깊은 곳에는 ‘여자는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는 무시 역시 깔려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세대로부터 ‘남자다움’을 배우며 자란 젊은 세대는 양상이 다르다. 가족을 먹여 살린다고 큰소리쳐봐야 아내한테서 돌아오는 것은 ‘웬 공치사냐’는 코웃음뿐이다. 훨씬 잘 먹여 살리는 남자들이 인터넷에 넘쳐나기 때문이다.
많이 배운 아내가 탁월한 분석력으로 아킬레스건을 찔러올 때에는 ‘남자답게’ 입을 꾹 다물고 버텨낼 재간이 없다. 아버지 세대처럼 남자답게 존중을 받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런데 ‘남자답게’ 살아서 좋을 것만 같던 아버지 세대의 남자들에 대한 뜻밖의 분석이 얼마 전에 신문에 실렸다.
통계청이 조사한 결과 지난해에 이혼한 50대 이상 부부가 총 3만7400명으로 전체 이혼의 32.8%를 차지했는데 이것은 10년 전인 2002년(1만9600명)보다 90.8%나 늘어난 규모라는 것이다. 통계청 설명으로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가장 많았다고 한다.
반면 20대와 30대의 이혼은 각각 7.7%, 5.6% 줄었다.
젊은 커플들이 그 나름으로 결혼생활에 지혜롭게 적응하는 반면, 오히려 산전수전 경험을 쌓았다는 장년-노년층의 이혼 건수는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것이다. 장년-노년층 이혼 건수 급증은 50대 이상 남성들이 자존심의 마지막 보루로 여겼던 ‘남자다움 신화’의 종말을 의미한다. 온순한 줄 알았던 아내들은 경제적 손익 등을 꼼꼼하게 따진 뒤에 이혼을 요구한다. 아내가 나 없이는 살 수 없을 거라 믿었던 남편은 충격을 받는다. 아내의 마음 같은 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남자다운 게 아니었으므로 충격이 더욱 크다.
예전에는 미덕으로 여겨졌던 ‘남자다움’. 그러나 남자다움은 21세기에 들어 족쇄로 둔갑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불리한 사고방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남자다움이 남자를 힘들게 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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