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20년 넘게 국제정치학을 강의해 왔지만 아직도 난감할 때가 있다. 바로 현대 국제정치학의 주류 이론이라며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 등을 소개할 때다. 우선 학생들은 ‘○○주의’라는 이름에 지레 겁을 먹는다. 무슨 난해한 철학적 사상이거나 정치적 목적을 띤 이념이 아니냐는 생각 때문이다.
또 그 이름의 막연함에 질겁한다. 현실주의라는 말은 지나치게 일반적이어서 국제정치라는 특정한 현상을 담기에 한계가 있다. 자유주의란 말도 너무 포괄적이다. 때로는 국내 정치의 사상이나 이념을 지칭하고, 때로는 경제정책의 기조를 이야기할 때 쓰는 용어다. 거기에 구성주의를 더하면 아예 손을 들고 만다.
게다가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성주의가 이론적 우월성을 놓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고 하면 따라오는 학생이 많지 않다. 생각이 깊은 학생들은 아예 항의를 한다. 이름을 놓고 봤을 때, 왜 현실주의가 자유주의, 구성주의와 경쟁 관계에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주의의 경쟁 상대라면 차라리 ‘이상주의’가 맞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그런 학생을 만나면 정말 기쁘다. 천하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인생삼락 중 하나라고 한 맹자의 말씀이 과연 옳다고 무릎을 친다. 과연 그렇다. 현실주의의 상대는 이상주의다. 그것은 모든 정치 이론의 출발점이었다. 거기에 학문 발전의 지식사회학적 측면이 더해져 오늘날 국제정치이론 대립 구조를 낳았다.
사실 동양의 맹자, 서양의 플라톤 이래 모든 정치 이론과 사상은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로 나눌 수 있다. 현실주의는 눈앞에 전개되는 정치 현실의 인과 구조를 따지고 그 안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찾는다. 이상주의는 눈앞의 모습을 넘어 상상 속의 모습을 그린다.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모습 중 바람직하고 달성할 수 있는 것을 설파한다.
무릇 정치적 삶이 고단하고 참담한 난세(亂世)에 정치 이론이 성(盛)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난세에 제자백가가 등장했다. 고대 그리스의 난세에 소피스트, 소위 궤변론가들이 판을 쳤다. 난세에서 살아남고 성공하는 방법을 설파하는 것이 현실주의다. 그 현실을 뛰어넘는 대안적 모습을 그리고 설파하는 것이 이상주의다.
대표적인 현실주의 이론가로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한비자(韓非子),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마키아벨리가 꼽힌다. 그들이 보기에 정치적 삶이 참담한 이유는 인간이 사악하거나 적어도 불완전하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사악하고 불완전한 한 그 같은 정치 현실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에 적응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정치적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공자와 맹자, 플라톤과 같은 이상주의자들에게 그처럼 참담한 현실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또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의 가능성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에게 어울리는 정치적 삶의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설파했다.
난세에는 현실주의가 기본 이론이다. 이상주의는 공허한 규범 이론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상주의는 치세(治世)를 가져오고 그 치세에서 성세를 구가하기도 한다. 유교가 한나라 400년의 치세를 낳았다. 이후에도 중국과 동양의 정치사에서 유교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플라톤의 공화국론도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대 민주주의의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국제정치학의 기초 이론은 현실주의 이론이다. 세계정부를 거부하는 주권국가들이 펼치는 국제정치가 기본적으로 약육강식의 난세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 난세를 참지 못해 새로운 국제정치의 모습을 제시했던 것이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다.
그는 1918년 1월 8일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소위 ‘14개 조항’ 연설을 통해 국제정치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국제연맹의 설립을 주도하고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다. 그러나 그의 비전은 불과 20년 만에 닥친 제2차 세계대전으로 하나의 몽상(夢想)으로 치부되고 그는 국제정치에서 대표적인 이상주의자로 꼽혔다.
그러나 공자 맹자와 플라톤의 사상이 2500년을 살아남았듯이 이상의 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매력 있고 현실적인 비전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이상주의는 현실주의의 천적이다. 윌슨이 내세웠던 민족자결주의는 탈식민지와 주권평등의 원칙으로 자리 잡아 20세기 후반 국제 정치 질서의 초석이 됐다.
윌슨의 사상은 우리 역사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민족자결의 비전은 우리 선조들에게 주권 의식과 주인 의식을 심어 주어 3·1만세운동에 나서고 대한‘제국’이 아닌 대한‘민국’을 내세우도록 했다. 그렇게 빚어진 역사의 바탕 위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
8일, 윌슨의 연설 이후 95년 3개월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연설한다. 어지러운 국내외 정치에 어떤 희망적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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