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에서 우리 경제가 그나마 남다른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경제의 고성장(수출 수요 증가)과 엔화 강세(가격경쟁력)를 바탕으로 한 수출의 역할이 컸다. 문제는 현 정부 들어 이러한 상황이 역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성적표가 실망스럽게 나타나고 엔화 약세가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는 시진핑 신정부 아래에서 그동안의 고성장에서 안정성장으로 전환해 자국 내 과잉(부동산, 지방정부 부채 등)을 조정하면서 위험관리 모드로 진입한 듯하다. 올 1분기 성장률은 7.7%. 2000년 이후 10% 내외의 고성장을 기록하던 중국 경제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다. 일본도 지난해 11월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을 제시해 엔화 약세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경합하는 제품이 많은 우리 기업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97엔대로 다시 내려온 달러-엔 환율은 원-달러 환율로 잘 대응하면 그렇게 무서운 위협은 아닐지도 모른다. 과거처럼 눈에 띄게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원-달러 환율을 같은 비례로 절하시킬 순 없지만 최근 들어 비가격경쟁력 제고와 해외생산 확대 등으로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특히 중국) 경제성장의 둔화이다. 중국 경제가 회복하면 환율 문제는 극복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득탄력성(세계 경제성장)이 가격탄력성(환율 효과)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이전처럼 두 자릿수의 고성장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대외 환경과는 달리 전기 대비 0.9%를 기록한 1분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시장의 예상을 넘어서는 양호한 것이다. 4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동결한 이유의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앞으로 우리 경제를 낙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투자와 수출이 성장을 이끌었지만 건설투자의 경우 정부 주도의 토목 사업 위주였고 설비투자가 증가한 것은 수출산업에 국한되고 있다. 수출도 아직은 긍정적인 모습이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엔화 약세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정부는 엔화 약세 영향이 수출에 미치는 데는 2개 분기 정도의 시차가 있다고 추정한다. 반면 가계의 소비는 위축되었다. 고용이 둔화되고 가계부채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수출 부진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설비투자도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부진한 소비를 뒷받침하고 건설투자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밖에 없어 보인다. 정부의 추경이 신속하게 집행돼야 하는 이유다. 여기에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의 뒷받침도 필요해 보인다.
한국은행에서는 금리 인하 무용론을 얘기하지만(적어도 심리적으로는, 그리고 시장의 예상으로는) 부진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한국은행이 경제를 위해 모든 일을 다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정책적 의지를 보여주고 그것을 시장과 적절하게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이 하향 안정된 것은 우리 경제에 호재로 작용한다. 물가 상승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적극적인 통화·재정정책을 통한 경기 진작의 시간적 여유를 줄 것이다.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도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아직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해 국내총생산(GDP) 갭이 플러스로 돌아오지 못했다며 상당 기간 마이너스 GDP 갭을 간다고 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물가 걱정 없이 금리 인하를 포함한 탄력적인 정책 운영을 통해 경기 부양을 추진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더 힘을 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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