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외곽의 한 생활보호소에 맡겨진 아이는 야생동물에 가까웠다. 몸을 웅크린 채 뛰어다니고 끊임없이 코를 킁킁거렸다. 13세 소녀의 행동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사회복지사는 경찰에 ‘기괴한 아이’의 존재를 신고했다.
아이는 생후 20개월부터 10여 년간 아버지의 학대를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약간의 정신지체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아버지는 보호를 명분으로 딸을 침실에 감금했다. 낮에는 유아용 변기, 밤에는 침낭 속에 묶어 뒀다.
사람들은 아이를 지니(Genie)라고 불렀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 나오는 요정 지니처럼 자유를 빼앗겼다는 뜻이었다.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산됐고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니는 미 역사상 최악의 아동학대 및 가정폭력 사례로 거론된다.
최근 한국에서도 지니 못잖은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주만 해도 생후 7개월 된 여자아이가 쓰레기로 가득 찬 승합차에서 유기견 6마리와 뒤엉켜 양육되다 주민 신고로 발견됐다.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의 보금자리였던 제천영육아원의 아이들은 부모나 다름없는 보육교사들로부터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일부 아이는 벌로 생마늘과 청양고추까지 삼켰다. 5일 어린이날, 5월 가정의 달이란 말을 입에 담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학대를 받은 지니들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는 자명하다. 지난달 경찰에 입건된 청소년폭력조직 ‘역삼패밀리’의 한 학생은 “집에서 부모가 때리고 윽박지르기만 했다”고 진술했다. 고종석 등 아동 성폭행범들도 예외 없이 경찰 조사에서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4대악 척결 가운데 학교폭력과 성폭력의 출발점이 가정폭력이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다.
문제는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은 암수(暗數)범죄가 많다는 데 있다. 실제 범죄가 발생했지만 신고되지 않아 통계로 잡히지 않는 사건이 훨씬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서울지방경찰청에 112로 신고되는 가정폭력은 하루 평균 100건이나 된다. 1년이면 3만6500건이다. 남편의 주먹질, 아빠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살려 달라’고 절규하는 목소리가 가득하다.
더 놀라운 건 형사 입건되는 비율이다. 경찰이 출동해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가족들의 탄원으로 93%가 처벌받지 않는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는 어른이 아이의 마음에 폭력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다. 4대악 척결에 앞장서고 있는 경찰의 고민은 암수범죄를 어떻게 양지로 끌고 나올지, 처벌받지 않는 93%를 어떻게 줄여야 할지에 모아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불행한 지니들이 벌이는 학교폭력과 성폭력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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