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마다 수사 받는 국정원, 어느 나라가 정보교류하겠나
박근혜 대통령-남재준 원장, 국내정치 개입 관행 끊고 모사드로 탈바꿈 시켜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적대세력과 싸우는 정보기관이 정권교체기마다 압수수색을 당하고 수사를 받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다. 그 근본 원인을 국가정보원 스스로 제공했다.
여직원 댓글 사건만 하더라도 국정원이 이런 일을 과연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국정원의 역할은 종북(從北) 사이트나 북한의 해외 사이트에 접선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이적(利敵)행위를 적발해 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교통경찰처럼 네거리를 지키고 있다가 신호위반 차량을 잡아내면 된다. 국정원 심리전국 직원들이 정체불명의 누리꾼들 속에 숨어 댓글을 단 것은 감시와 적발의 영역을 넘어서 여론조작의 성격이 짙다.
국정원 여직원이 단 댓글에는 대선후보나 ‘제주해군기지’ ‘4대강’ ‘보편적 복지’와 관련된 글도 있었다. 국정원 내부망(인트라넷)에 올려진 25건의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문건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4대강 사업 등 국책사업이나 정부 주요 정책에 대한 홍보 및 대국민 여론전을 지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물론 4대강 사업이나 한미 FTA 반대운동에 북한과 연계된 세력이 끼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대북정보 수집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구실이 돼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보 전문가가 아닌 서울시 공무원 출신인 핵심 측근 원세훈 씨를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부터 화근(禍根)이었다. 원세훈 국정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도 깜깜이었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으로 대북 정보 능력이 아예 부재(不在)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은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우리나라 정보기관의 국내 정치 개입은 태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기관장이 대통령을 시해해 정권을 장악하려 든 것도 세계에 유례가 없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1979년 10·26사건 이후 “우리는 모사드가 될지언정 사바크가 되지 않겠다”며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지금도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활약을 하지만 이란의 사바크는 팔라비 왕조를 보호하며 국민탄압에 앞장서다 호메이니 혁명으로 사라져버렸다. 정권안보를 하지 않고 국가안보에 매진하겠다는 다짐은 안기부에서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채널A에 출연해 “정보부 출신인 나도 안기부의 정치 탄압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1992년 김영삼 씨와 신한국당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안기부 직원들이 대의원들과 자신의 접촉을 철저히 방해했다는 것이다. 대의원을 못 만나니 선거운동을 할 수 없고 결국 불공정한 룰에 승복할 수 없어 후보를 사퇴했다고 한다.
그는 1997년 김대중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울 때 지방에 갔다가 현직 안기부 지부장이 DJ캠프에서 일하던 전직 안기부 간부에게 “그만하쇼. 신상에 좋지 않을 거요”라고 협박하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대선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DJ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자 현직 안기부 간부가 기밀이 담긴 노란 봉투를 들고 DJ를 만나고 돌아가는 장면도 목도했다. 정보기관의 부끄러운 줄 대기가 정권교체기마다 기승을 부렸다는 비판에 국정원은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은 러시아가 제공한 정보를 미국이 무시하는 바람에 사전에 예방할 기회를 놓쳤다. 정보기관끼리는 국제공조가 중요하다. 그런데 대통령이 바뀌면 압수수색을 당할 국정원과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 정보를 공유할지 모르겠다.
국정원은 테러분자나 간첩이 국내에 들어와도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없다. 과거 정치권과 언론은 국정원의 도청 공포에 시달렸다. 그래서 국회가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해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05년에도 김대중 정부 시절의 국정원장 두 명이 도청과 관련해 형사처벌을 받았다. 당시 국정원은 카스라는 휴대전화 감청장비도 개발, 운용하면서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시치미를 뗐다. 간첩이나 테러분자가 한가하게 사무실 전화만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남의 전화를 불법적으로 몰래 듣는 도청과 합법적인 감청은 다르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서 손떼고 국가안보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는 법률이 국회와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면 국정원이 제공하는 국내 정치 정보의 단맛에 탐닉하기 쉽다. 박근혜 대통령은 꿀맛에 중독되기 전에 국정원을 국가안보기관의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 대통령이 측근이 아닌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남재준 예비역 대장을 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잘한 일이다. 국내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던 정보기관장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박 대통령이 남 원장과 함께 국정원을 모사드 같은 정보기관으로 탈바꿈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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