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성과에 집착해 북한의 이벤트에 넘어가지 말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서로 더욱 신뢰하고 존중해야
글로벌 전략동맹으로써 동북아평화의 핵심축 기대
밑그림이 좋으면 내용도 덩달아 좋아 보이기 마련이다. 한미 양국 정상이 힘차게 웃는 장면이나, 또박또박한 영어로 한미동맹의 역사와 장래의 비전에 대해 연설한 박근혜 대통령을 미국 상하원 의원들이 뜨거운 박수로 화답(和答)하는 장면들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과 튼튼한 한미동맹의 현재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하다.
양국 정상은 두 나라가 현 시점에서 꼭 확인해야 할 몇 가지 사안에 대해 교감하고 명확한 합의를 도출했다. 우선 한미동맹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담보하는 핵심축(linchpin)이라는 점과 국제사회의 보편타당한 규범과 가치를 함께 수호하고자 하는 글로벌 전략동맹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글로벌 코리아 외교의 확대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의 전략적 위상과 가치를 격상시킬 뿐 아니라, 국제사회와의 공감대 위에서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토양(土壤)을 제공해줄 것이다.
당면한 북한 문제에 관해서는 안보에는 단호한 태세로 공조하되 북한의 올바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로 했다.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은 2009년의 한미동맹 미래비전에 이어 자유민주 가치에 입각한 평화통일의 달성을 동맹의 분명한 지향점으로 재확인했다. 공동의 가치와 신뢰를 기반으로 한 동맹 정신에 입각하여 한미 양국 간 협력의 틀과 범위를 재정비하고 확대해 나가기 위한 양국의 노력이 절실하다.
이번에 양국이 합의한 내용이 아무리 타당하다고 할지라도, 앞으로 있을 갖가지 도전에 맞서 실제로 어떤 공조와 대응을 펼 것인지는 지금부터 한미 양국이 풀어야 할 과제다.
첫째, 대북(對北) 정책의 성과에 대한 조바심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 북한에 촉구한 내용은 핵(核)을 단념하고,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의무를 준수하며, 주민의 삶과 인권을 개선시키라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그런 쪽으로 변화를 보여야 한반도의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한국의 대통령이 4번, 미국의 대통령이 5번 재임하는 동안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 지도부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확인되었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과 이른바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하던 시기에 한국 정부는 한반도의 선언적 평화를 실질적 평화인 양 오인하면서 남북 교류협력의 이벤트에 매몰된 적이 있다.
미국 역시 빌 클린턴 정권 임기 말이나 2기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후반기에 북한 상황 관리라는 국내정치적 목표에 따라 북한의 진정성 없는 비핵화 시늉에 대북 금융제재를 풀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 전례가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 문제를 다룰 때 단기적 상황 관리에 집착해 이번에 합의한 원칙과 정도(正道)를 저버리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에 변화를 불어넣는 과정은 지난(至難)할 것이며, 참을성 있고 일관된 정책하에서만 서서히 열매를 맺을 것이다. 설사 남북 간 신뢰 프로세스 자체가 작동되지 못하고 무산되는 결과가 온다 해도 이는 박근혜, 오바마 정부의 잘못이 아니다. 북한이 손뼉을 마주쳐 주지 않는다면 그 결과에 대한 평가와 책임도 오롯이 북한이 져야 할 일이다.
둘째,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양국의 신뢰를 저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미 의회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을 현대화하고 양국에 호혜적인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이용 문제가 한국에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3년간 한미 당국 간에 평행선을 달리던 첨예한 쟁점을 미국 대통령과 의회 앞에 정면 제기함으로써 박 대통령은 할 일을 했다.
이제는 당국자들이 적극 나서서 그간의 오해와 불신의 대목들을 해소하고 정리해 나가야 한다. 한미 양국의 원자력 산업이 함께 더욱 큰 기회를 만들 수 있고, 양국이 서로 더욱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수준의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셋째, 한미동맹과 중국, 일본과의 관계를 지혜롭게 관리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미 의회 연설에서 경제적 상호의존은 긴밀해진 반면 정치안보 관계는 답보(踏步)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현실을 ‘아시아의 패러독스’라 불렀다. 한미동맹은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예단해 둘만의 어려운 해법을 모색하기보다는, 중국의 이해와 협조를 확보해 보다 수월하게 풀어나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북한과 중국에 ‘바른’ 판단을 촉구하는 한미일 3국 안보공조의 유용성이 퇴색되지 않도록 한미가 일본 지도부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자성도 함께 일깨워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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