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24일 윤창중 씨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수석대변인이 됐다는 발표를 들었을 때 같은 직종에서 일해 온 상당수의 언론인들은 ‘이건 아닌데…’라는 느낌을 받았다. 발탁 배경이야 늘 설왕설래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보다 더 큰 관심사는 ‘깜’이 되느냐였다. 워낙 튀는 글쓰기와 언행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지나친 보수 성향’은 그 다음 문제였다.
그의 스타일은 언론의 세계에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의 글을 좋아했던 독자도 꽤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장점이 신중함을 요구하는 공직 세계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언론에 있을 때처럼 하면 불안하다는 인상을 줄 것이고, 언론에 있을 때처럼 하지 않으면 소신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도 과거 행적이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인사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을 거쳐 청와대 대변인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으로서 어떤 처신의 변화를 보였는가. 튀는 언행은 여전했고, 기자들에게 욕을 먹을지언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무소신’의 길을 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그릇’이 커진 것도 아니었다. 어제 그의 ‘성추행 사건’이 알려지자 언론인들이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내 그럴 줄 알았다”였다. 어느 한 인간에 대한 평판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박근혜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됐을 때도 능력보다는 평판이 문제였다. 고령에다 귀까지 어두운데 어떻게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며 총리의 격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첫 평판이었다. 말이 좋아 책임총리이지, 박 대통령이 혼자서 국정을 꾸려가기 위해 ‘무늬만 총리’를 택한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그런 터에 도덕성 문제까지 불거졌으니 더이상 버티기가 어려웠다.
김 후보자도 그렇지만 박근혜정부 들어 초기 평판이 나빴던 인사치고 살아남은 경우는 거의 없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문제도 있었지만 ‘4성 장군 출신이 무기중개업체 로비스트가 웬 말이냐’는 부정적 평판과 군인의 최대 불명예인 ‘거짓말’이 결정타였다.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공정거래 분야에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던 대형 로펌에 근무한 경력과 해외재산 때문에 지명되자마자 역풍이 거셌다. 둘 모두 ‘능력’이 아니라 ‘평판’에 진 것이다.
유일한 예외라면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정도다. 그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자질은 국민에게 나쁜 평판을 넘어 허탈감까지 안겨줬지만 야당에까지 양해를 구한 박 대통령의 ‘애정’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해서 아직도 국민과 언론은 그를 주시하고 있다. 그는 ‘평판’을 ‘능력’으로 극복해야 할 부담을 안고 있다.
언론은 고위 공직자 인사가 발표되면 자료만이 아니라 평판으로도 검증한다. 인사청문 제도가 없던 시절엔 평판이 좋지 않으면 능력은 있다고, 능력이 조금 떨어지면 평판은 괜찮다는 식의 인물평이 많았다. 그러나 평판이 나쁜 사람은 대개 끝이 좋지 않았다. 윤 전 대변인 임명 때는 그런 조회가 없었는지, 있었지만 왜곡됐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 궁금하다.
사람은 대체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아무리 탐나는 자리라 해도 감당할 능력이 되는지, 자질과 도덕성에는 문제가 없는지 스스로 체크하는 ‘자가(自家)청문회’를 거칠 필요가 있다. 고위 공직은 아무나 덥석 받아도 되는 공짜 선물이 아니다. 분수에 넘치는 큰 감투를 쓰게 되면 목이 부러질 수 있다.
공직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런대로 잘 살 수 있었던 사람이 남세스러운 꼴을 당하고 자리까지 잃은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봐 왔다. 이번에 윤 전 대변인이 꼭 그렇다. 더욱이 그는 개인의 굴욕을 넘어 정부와 국격에까지 먹칠을 했다. 윤 전 대변인은 ‘평판’도 ‘능력’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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