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인규]한은 총재의 ‘견제’가 없으면 ‘균형’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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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11일 03시 00분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최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연 2.5%로 결정했다. 7개월 만의 금리 인하다. 그간 정부는 금리 인하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지만 금통위 의장인 김중수 한은 총재는 불과 1주일 전까지만 해도 금리 동결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랬기에 그의 ‘깜짝’ 변신은 예상 밖의 사건이다.

김 총재가 4월 금통위에 이어 이번에도 금리 동결을 시사했을 때 정부는 암묵적으로, 여당은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자칫 청개구리 심리를 갖고 있거나, 호주산 늘보의 행태를 보이는 것이 없도록 조심해주고 국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좀더 적극적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거의 모욕적인 언사로 김 총재를 압박했다.

그러나 시계를 3년 전으로 돌려보면 김 총재와 이 원내대표는 지금과는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폈다. 당시 정부 내 주류였던 김 총재는 “한은도 큰 틀에서 정부”라며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비주류였던 이한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는 정부로부터 독립돼서 소신 있게 전문성을 갖고 통화정책을 운영하도록 중앙은행(한은)에 요구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랬던 두 사람이 지금은 정반대가 됐다. 이 원내대표는 김 총재가 금리를 인하해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조원동 대통령경제수석을 비롯한 정부의 경제팀 역시 같은 입장이다. 새 정부 출범 후 이틀 전 금리 인하를 결정하기 전까지 김 총재는 “중앙은행 독립은 어느 나라에서나 중요한 가치”라며 이명박 정부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김 총재와 이 원내대표의 이러한 변신은 공공선택론(公共選擇論·Public Choice)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공공선택론은 정치인과 공무원의 정치적 행태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개인의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뭘 입고 나갈지부터 선택의 고민이 시작된다. 정부나 한은과 같은 공공부문의 일상 역시 개인의 생활처럼 선택의 연속이다. 재정지출을 언제 어떤 규모로 실시해야 할지 통화를 언제 얼마나 풀어야 할지 등 쉽지 않은 선택을 끊임없이 강요당한다.

개인의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공공부문의 선택은 공공(국민)의 몫이 아니다. 국민의 위임을 받은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국민을 대신해 공공선택을 한다. 올 1월 작고한 미국 조지메이슨대의 제임스 뷰캐넌 교수는 공공선택론을 창시하고 발전시킨 업적으로 198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정치인과 공무원이 공공선택을 할 때 국민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앞세운다고 설명했다.

뷰캐넌 교수의 설명대로 김 총재와 이 원내대표의 변신은 나름 자신들의 정치적 이기심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 원내대표야 정치인이니 그렇다 쳐도 김 총재의 거듭된 변신은 큰 문제다. 현 정부 들어 김 총재가 정부 여당의 줄기찬 압박에도 불구하고 금리 동결을 유지해 나갔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한은 총재로서의 학습을 통해 중앙은행 독립성의 중요성을 깨달은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 전과 비교해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경제상황에서 김 총재는 금리 인하로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스스로 한은의 전문성과 신뢰성에 큰 상처를 입혔다. 이번 일로 인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주장하기가 더 힘들게 됐다.

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중요한가? 정치인과 공무원이 공공선택을 할 때 정치적 이기심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막으려면 그들의 정치적 이기심을 제도적으로 규율해야 한다. 경제정책의 칼자루를 쥔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이기심은 경기부양과 같은 단기적 성과에 있다. 경기부양 정책이 초래하는 후유증은 중장기적으로 발생하므로 차기 정권으로 떠넘기는 게 가능하다.

제도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면 중앙은행은 금융정책을 통해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기 쉬운 정부 여당의 재정정책을 ‘견제(check)’할 수 있다. 제대로 된 견제가 없으면 경제정책의 ‘균형(balance)’은 쉽게 무너진다. 균형이 무너졌을 때의 중장기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미국의 예를 보자. 레이건 행정부 시절 우리의 한은 총재에 해당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낸 폴 볼커의 별명은 ‘미스터 고금리(高金利)’였다. 고금리 정책을 통한 그의 ‘악명’ 높았던 견제 덕분에 미국은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나 경제회복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앨런 그린스펀의 견제 실패는 부동산 버블을 키워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김중수 한은 총재는 한국의 ‘그린스펀’이었다. 새 정부 들어 한국의 ‘볼커’로 변신을 시도하던 그가 예상을 깨고 다시 ‘그린스펀’으로 회귀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기준금리#금리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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