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기록은 무섭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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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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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처지를 더욱 옥죄는 건 그가 칼럼니스트 시절 쏟아놓은 말들이다. 그는 “청와대 대변인은 정권의 얼굴”이라고 했고, “국민은 눈만 뜨면 성폭행, 성추행하는 미친놈들 때문에 스트레스 팍팍 받으며 살고 있다”고 쓴 적도 있다. 말 그대로 그는 청와대 대변인 신분으로 ‘워싱턴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이 돼 나라와 정권의 얼굴에 먹칠하고, 국민은 스트레스를 팍팍 받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도 민망한 장면들이 되풀이되곤 한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로 추궁을 당했던 신재민 씨. 그는 기자와 논설위원 시절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을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썼던 사실이 들춰져 “제 눈에 든 들보를 보지 못한 데 대해…”라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같은 시기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주민등록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교수 시절 ‘각료라면 위법 사실은 없어야 국민에게 개혁을 주문할 자격이 있을 것’이라고 쓴 칼럼 때문에 변명조차 힘들었다.

▷정책에 대한 말 바꾸기도 마찬가지다. 2010년 야당 최고위원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신(新)을사늑약’이라고 비난했던 정동영 씨. 사람들은 그가 4년 전 여당 의장 시절 ‘한미 FTA는 향후 50년간 한미관계를 지탱해줄 기둥’이라고 말한 사실을 떠올리며 어리둥절해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의원은 2007년 국무총리로서 “제주에 세계 평화의 섬과 해군기지는 양립 가능하다”고 했다가 5년 후 야당 대표가 돼서는 “제주도민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여 달라”고 표변했다.

▷‘자신의 말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옛말은 입에서 한 번 떠난 말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디지털 시대에 더욱 들어맞는다. 말의 속도는 빛처럼 빨라졌으나 무게는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말을 잡아놓는 기술이 좋아지는 바람에 잊혀지지 않고, 그러다 보니 용서도 어렵다. 망각의 미덕이 사라진 것이다. 윤창중 씨가 칼럼에 남긴 말 중에 이런 명언이 있다. “기록은 무섭게 남는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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