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찰의 성추행 조사가 시작되자 일정을 중단하고 부리나케 귀국했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그제 기자회견에서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허울뿐인 사죄와 반성을 했다. 핵심적인 의혹에 대해서는 모두 부인했으니 사죄와 반성을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피해 인턴 여성의 업무 능력을 비난하고 상사인 이남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걸고 넘어졌다.
허리를 툭 쳤으니 성추행이 아니라 ‘위로와 격려의 제스처’라는 윤 씨의 주장은 상식 밖이다. 그는 “미국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생각에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자신의 잘못을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로 덮으려는 발상은 치졸하다.
피해 여성과 함께 이 사건을 신고한 사람은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동료 인턴이 아니라 워싱턴 주미대사관의 한국문화원 여직원이라고 한다. 현지 여직원이 도움을 줬다는 것은 피해 여성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으며 사안이 그만큼 심각하다고 판단했다는 방증이다.
윤 씨가 핵심적인 대목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정황도 있다. 윤 씨는 9일 귀국 즉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피해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기자회견에서 피해 여성이 자기 방을 노크했을 때 ‘속옷 차림’이라고 밝혔으나 공직기강팀 조사에서는 ‘노 팬티’ 차림을 시인했다는 것이다. 거짓말과 남의 탓으로 자기 보신에만 급급한 사람이 대통령과 청와대를 대변했다니 한심하다.
윤 씨는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직전까지 상사였던 이 수석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그는 자신이 중도 귀국한 것은 도망 온 게 아니라 이 수석이 귀국을 종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수석에게 “제가 잘못이 없는데 왜 일정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해명을 해도 이 자리에서 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이 수석의 지시에 할 수 없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상사가 시킨 대로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는 걸 누가 납득하겠는가.
이 수석은 곧바로 윤 씨에게 귀국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윤 씨는 그렇게 억울했다면 미국에 남아 떳떳하게 경찰 조사를 받았어야 마땅하다. 당당하다면 지금이라도 자진해 미국으로 가서 조사를 받는 것이 옳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 날 의회연설 준비에 매달리고 있을 때 술을 마시면서 여성 인턴과 시간을 보낸 것만으로도 공직자로서 낙제감이다. 그가 인턴과 헤어져 술에 취한 모습으로 기자들의 눈에 띈 오전 4시 반까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도 밝혀야 한다.
이 수석을 포함한 청와대의 위기 대응 방식도 허점이 많았다. 사건 발생 만 하루가 지나서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미시USA’ 사이트에 성폭행 주장이 제기된 후에야 부랴부랴 윤 씨의 경질을 발표했다.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저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책임질 일이 있다면 결코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럴 각오라면 정확한 사건 규명이 우선이다. 그래야 책임질 사람도 나오지 않겠는가.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 성폭력과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을 4대 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척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대통령의 의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될 것이다. 신속한 사건 규명과 책임자 처벌만이 실추된 국격(國格)을 회복하는 길이며 근거 없이 퍼져 나가는 각종 루머를 차단하는 방법이다. 그것이 피해 여성에게 사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