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호주 시드니에서 보낼 계획인 후배 H는 시드니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매월 25일이면 들어와야 할 돈이 3월에는 6일 늦게 들어오더니 4월분은 아직도 입금이 되지 않아서다. H가 목을 빼고 기다리는 돈은 정부에서 지급하는 양육수당이다. 올해부터 양육수당 지원 대상이 확대되면서 H는 다섯 살인 첫째 아이 앞으로 10만 원, 세 살인 둘째 앞으로 15만 원 등 월 25만 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H는 이 돈을 모아서 여행경비에 보탤 생각이다.
관할 구청인 서울 강남구청에 언제 양육수당이 지급되는지 문의했더니 “5월까지는 예산이 확보돼 있으니 지급 중단은 아니고 행정 착오인 것 같다. 곧 지급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5월 이후에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그때 가봐야 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남구청에서 5월 이후 양육수당 지급 여부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하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다. 소득기준 하위 15%에 대해 지급됐던 5세 이하 아이들에 대한 양육수당과 보육료 지원 대상이 올해부터 전 계층으로 확대되면서 추가로 드는 예산은 전국적으로 1조4400억 원이다. 이 돈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올해 예산에 중앙정부가 부담해야 할 돈은 반영됐지만 지방정부가 부담할 돈은 편성되지 않았다. 중앙정부가 지방 재정난을 감안해 5600억 원을 더 지원하기로 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부담은 대폭 줄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광역자치단체에서는 보육예산을 어느 정도 자체적으로 마련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그렇지 못한 형편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무상보육 확대로 인한 서울시의 추가 재정 부담액은 7500억 원 수준으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많다. 원래 지원 대상이 아니었던 중산층도 지원 대상으로 편입되면서 서울시의 보육예산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두 번째 이유는 서울시가 보육예산이 늘어나는 만큼 전체 예산에 편성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올해 양육수당 예산으로 정부지원금을 포함해 3098억 원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 서울시가 준비한 예산은 400억 원이 채 안 되는 액수다. 이는 3월 한 달만 지급해도 고갈되는 액수다. 서울시는 중앙정부에서 1년 치 예산에 맞춰 미리 지원한 금액을 앞당겨서 양육수당으로 지급하고 있는데 이 역시 6월에는 바닥이 난다.
중앙정부의 지원금을 계산하더라도 부족한 서울시 보육료는 2000억 원이 넘는다. 서울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중앙정부의 추가 지원을 요구하고 있고, 중앙정부는 지원할 만큼 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공약인 무상급식에 연간 1300억 원을 쏟아 붓는 서울시가 ‘무상보육’에는 그 돈의 3분의 1도 안 되는 예산을 편성해 놓고 정부에 손을 벌리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중산층의 해외여행 경비를 예산에서 퍼주는 정부도 이해가 안 되고, 학생들 밥은 공짜로 주면서 애들 키우는 건 공짜가 안 된다는 서울시는 더 이해가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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