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바그너 200주년… 다시 뜨는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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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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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독일이 내놓고 못 즐기는 바그너의 게르만민족 숭배 음악
유럽 재정위기 깊어지자 이젠 반게르만 감정이 부글
세계화 시대에도 영원한 건 내 나라 내 핏줄인가

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없는 아들의 생일. 22일 불멸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탄생 200주년 잔치를 앞둔 그의 고향 독일 라이프치히 공기는 야릇하고도 미묘했다.

페스티벌 공식 개막일인 16일보다 내가 일주일 먼저 찾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념일 전야제로 바그너 갈라콘서트가 열릴 오페라하우스에는 뮤지컬 ‘미녀와 야수’의 7월 공연 포스터가 바그너보다 더 크게 붙어 있다.

바그너를 모르는 사람도 ‘딴 따따따안…’으로 시작되는 ‘결혼행진곡’은 알 만큼 그는 우리 곁의 음악가다. “음악은 여자다”라는 그의 명언이 말해주듯,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같은 바그너 음악에 빠지면 엑스터시를 느낀다는 바그너리안도 적지 않다. 미국 메트로폴리탄오페라의 ‘니벨룽의 반지’가 영화로 옮겨지는 등 바그너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뜨겁다.

그런데 정작 독일 사람들은 불편한 눈치다. 세대를 건너뛴 그와 히틀러의 유대 때문일 거다. 그의 생일날 바그너 동상이 세워질 라이프치히 중앙역 부근에서 만난 라이너 뤼베 박사는 “동상이 어떤 모습일지 알지 않느냐”며 “그 정도로 논란이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동상은 166cm의 실물 크기지만 바로 뒤 거대한 그림자를 거느린다고 조각가 슈테판 발켄홀이 일찌감치 공개한 바 있다. 바그너 작품의 상징성이 그만큼 크다는 건지, 그가 남긴 어두운 역사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인지, 모든 논란을 쓸어 담겠다는 영악한 계산인지는 각자 판단해야 한다.

독일의 슈피겔지는 지난달 “이 ‘미친 천재’의 작품에서 역사를 떼어놓고 즐길 순 없을까”하고 물었다. 히틀러가 발전시킨 폴크스바겐 자동차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잘만 타는데 왜 독일인은 바그너 음악에 마음 놓고 감동받으면 안 되느냐는 자탄(自歎)이다.

폴크스바겐은 민족주의로 질주하지 않았지만 바그너는 부추겼고, 히틀러는 파국으로 몰고 갔다. “조심하라. 고약한 타격들이 닥쳐온다”며 애국심을 자극한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장인가수들’을 히틀러는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에서 축제의 오페라로 택했다.

그 민족주의를 접고 전쟁 없는 유럽을 이룩하자며 시작한 국제기구가 유럽연합(EU)이다. 독일은 경제부흥만이 아닌 속죄를 위해서라도 자국의 안정을 상징했던 마르크화를 포기하고 연대와 통합에 헌신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유로존 재정위기가 5년째로 접어들면서 민족주의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다. 이번엔 독일인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다. 구제금융 지원을 받은 남유럽은 물론이고,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 라틴문화권에선 EU 깃발에 나치 문양을 붙여서는 “독일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몰아붙이는 선동적 정치도 판친다.

바그너와 히틀러를 연결하는 원초적 탯줄이 게르만 신화라고 안인희는 ‘게르만신화, 바그너, 히틀러’에서 분석했다. 승리와 귀향으로 끝나는 라틴문명권의 그리스로마 신화와 달리, 게르만 신화에선 선악의 두 세력이 보물의 소유권을 놓고 너 죽고 나 죽자며 싸워서는 정말로 모조리 죽어 버리는 게 특징이다.

게르만의 프리즘으로 보면, ‘니벨룽의 반지’는 재정위기에 빠진 최고신 보탄의 고뇌로 시작된다. 궁전을 지어준 거인들에게 지불할 돈이 없다. 거인들 뒤에는 라인의 딸들한테 황금과 반지를 뺏어 치부한 난쟁이 알베르히가 있다. 드디어 영웅 지크프리트가 나타나 알베르히와 싸우지만 종국엔 모두 죽음으로 끝난다.

잔인할 만큼 인위적이고 난해하면서도 순결한 바그너의 오케스트라는 독일의 긴축재정을 표현하는 소리로 들린다. 공감능력이 있는 ‘파르지팔’처럼 독일이 위기 국가들에 연대의식을 발휘해 빚을 갚아주기는커녕,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건 절멸로 몰고 가는 오만이다.

그렇다고 손놓은 채 파국만 기다리는 정치인들은 무책임한 데카당스다. 히틀러같이 강한, 아니 선동적인 리더가 또 등장할지 모른다. 다시 올려다 본 EU 깃발 속의 황금색 별들은 동그랗게 반지모양을 이루고 있다. 유로화가 유럽을 파멸시키는 반지로 작용해서 또 한번 바그너의 음악적 예언이 세상을 뒤집을지 누가 아나 싶어진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 뒤에 유대인이 있다는 히틀러 시대의 선동과, 현재의 유로존 위기 뒤에 독일이 있다는 주장은 다를 바 없다. 당시의 반유대주의가 옳지 않았다면 지금 반게르만주의도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사실은 이념보다, 종교보다 강한 정치적 포스는 핏줄이라는 거다. 우리가 ‘윤창중 스캔들’에 국제적 망신이라고 가슴을 치는 것도 민족의식 때문이다.

라이프찌히 도시 역사박물관 '바그너, 욕망과 영원' 전에 걸린 LG스크린에선 1988년 동독 시절 쿠르트 마주르가 지휘한 바그너 공연실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민족감정이 분기탱천해도 지금 같은 세계화 시대, 한 나라가 혼자 풀 수 있는 문제는 많지 않다.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휘두르고, 중국이 차이나드림을 들이댄대도 이 순간엔 우리나라가 더 무섭고 또 자랑스럽다. 이것도 민족주의라면… 어쩔 수 없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바그너#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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