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에 그다지 보도되진 않았지만 지난주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성명을 발표했다. 쓰시마(對馬) 섬에서 도난당해 한국에 밀반입된 불상 두 점을 일단 일본에 돌려주고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는 따로 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성명을 낸 단체는 일본 내 한국 문화재 반환운동을 벌여온 ‘한국·조선 문화재 반환문제 연락회의’.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일본 이바라키대 명예교수가 대표를 맡고 있다. 올해 87세의 아라이 교수는 1993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군의 조직적 개입을 입증하는 업무일지 60점을 찾아내 공개하는 등 20여 년간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왜곡에 맞서온 학자다. 그런 만큼 성명의 무게는 달랐다. 수화기 너머로 그는 “이 문제가 또 하나의 한일 간 감정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다른 문화재 반환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며 “진상을 함께 조사해 서로의 거리를 좁히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난 불상은 원래 일본에 돌려주는 게 순리였다. 하지만 충남 서산시 부석사는 쓰시마 섬 관음사 소유이던 금동관음보살좌상에 대해 “14세기에 한국에서 제작돼 부석사에 봉안돼 있던 것을 당시 창궐하던 왜구가 약탈했다”며 이전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약탈 증거가 있을까.
부석사 원우 스님에게 전화하자 3가지 근거를 말했다. “불교계에서는 불상을 이안(移安) 할 때 복장기(불상 안의 기록)에 기록하는 게 원칙인데 불상이 부석사 소유라는 기록만 있고 이안 기록이 없다. 또 관음사 주장대로 선물이나 기증이라면 왜 그 기록이 없는가. 불상 머리 부분이 파손된 것도 약탈의 증거다.” 원우 스님은 “절도 범죄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관음사가 소장 경위를 대면 언제든지 가처분 신청을 취소하겠다”고 덧붙였다. 스님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관음사에 불상 소장 경위를 입증할 서류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직접 증거도 없이 ‘600여 년 전 왜구가 약탈했다’고 말하는 건 논리적 비약이라는 게 관음사의 주장이다. 일본 언론은 연일 한국이 장물(贓物)을 돌려주지 않는다며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독도 문제와 엮어 한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도 한다. 부석사 스님들이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관음사를 방문했던 것도 역효과를 낳았다. 당시 스님들은 국내 작가가 제작한 청동 불상과 마스코트 인형을 선물로 준비했다. 관음사 측은 이를 조롱으로 받아들였다.
문제가 감정싸움으로 치달으면서 쓰시마 시는 올해 8월 열릴 예정이던 32년 전통의 한일 문화교류 행사인 조선통신사 행렬을 취소했다. 일본 규슈국립박물관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2014∼2015년 한일 순회전으로 열 예정이었던 ‘구다라(백제) 특별전’을 무기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전시에 출품할 문화재 소장자들로부터 ‘한국에 가져가면 돌려받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문의가 쏟아졌다는 것이다.
한국 법원도 곤혹스러운 처지일 것이다. 장물이지만 원 소유주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다툼이 생겼으니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반환을 정지시켰을 텐데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외교 문제로 증폭된 것이다.
이번 문제는 국가 간 외교 문제이기도 하지만 불가에서 보자면 집안싸움이기도 하다. 이럴 때 부처님이라면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부석사 스님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불상을 일단 돌려주시오. 경위야 어찌됐건 장물 형태로 돌려받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니오. 관음사 스님들도 이를 계기로 국민과 함께 일본 내 한국 약탈 문화재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으시오. 이를 통해 양측 스님들이 한일 신뢰 회복의 단초를 마련하면 세상이 불가(佛家)를 우러러보지 않겠소.” 아라이 교수와 함께 해보는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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