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대통령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박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직접 사과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그만큼 현 상황을 엄중하게 본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은 성추행 사건을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러운 일’ ‘국민과 나라에 중대한 과오를 범한 일’이라고 규정했다. 진상 조사를 철저히 하고, 관련자들에게 응당한 책임을 물어 청와대의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사건의 진실을 국민에게 명확히 밝히는 일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것이 피해 여성과 가족, 미국 교민사회가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격(國格)을 바로 세우는 길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우왕좌왕하면서 박 대통령에게 만 하루가 지나서야 늑장 보고한 것은 직무 유기에 가깝다.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는지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참모가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보고와 소통의 문제점들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에는 공직의 엄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적지 않다. 정권이 바뀌면 공직을 떠나는 교수 언론인 의원보좌관 출신 등 공직 개념이 희박한 참모들이 사고를 낼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통령 방미에 일부 청와대 참모가 바람 쐰다는 기분으로 느슨한 자세로 따라 나선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공복(公僕)은 국민의 심부름꾼이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다.
윤 전 대변인과 관련해 주변과 화합하지 못하는 성격과 지나친 음주 같은 문제들이 다시 지적되고 있다. 대통령의 입이 되어야 할 대변인이 청와대 안에서 왕따를 당하고, 할 일은 별로 없다 보니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이 예정된 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배회하다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 방미 때 술에 젖어 있는 듯한 행태를 보인 사람이 청와대의 인사 검증 과정에서 어떻게 걸러지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윤 전 대변인은 현지 대사관 직원들에게 자주 짜증을 내면서 하인 부리듯 대했다는 말도 나온다. 이번 기회에 청와대 비서실 안에서 ‘제2의 윤창중’으로 다시 문제가 될 만한 참모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박 대통령이 세상의 평판을 무시하고 윤 씨를 고집했다는 점에서 예고된 사고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 보듯 초기에 공직 기강을 다잡지 못하면 남은 임기 내내 크고 작은 돌발 사고가 그치지 않는다. 청와대 기강 확립에 정권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