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를 가나 아이들의 미소는 해맑다. 생명의 기운을 갈구하는 폐허의 땅,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났던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필과 공책을 쥐여주면 뛸 듯이 기뻐한다. 이곳에서 알게 된 사실 또 하나. 아이들이 있는 곳은 절대 안전지대라는 점. 시도 때도 없이 로켓탄과 급조폭발물(IED) 공격, 자살테러 등을 감행하는 탈레반이지만 아이들은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다. 아프간 주둔 미군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미군은 늘 쫓기듯 움직였다. 바그람 기지 밖에 있는 비무장의 아프간 주민을 만나러 갈 때도 완전군장에 10kg이 넘는 방탄조끼를 두른 뒤 IED가 터져도 끄떡없는 특수장갑차를 타고서야 겨우 한두 걸음이다. 2001년 10월 개전한 뒤 10년 넘게 압도적 군사력을 갖고도 탈레반을 제압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공공외교의 실패다.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미국 편이라 해도 3000만 아프간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공외교는 이미 주요국 외교정책을 좌우하는 대세(大勢)가 된 지 오래다. 정치와 경제, 군사 중심의 흘러간 외교 방식을 버리고 대상국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서 설명하는 적극적 소통(疏通) 방식이 공공외교다. 그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우리 정부도 세계 178개 공관을 통해 활발한 대민 공공외교를 독려하고 있다.
외교부 첫 공모로 선발된 최고 수준의 비보이단(團)과 퓨전국악그룹을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 문화사절단으로 파견한 것도 한류(韓流) 열풍의 ‘끊어진 고리’로 평가받는 서남아시아 지역에 새로운 고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방글라데시와의 수교 40주년, 스리랑카의 독립 65주년을 계기로 삼았다.
공연단은 우리의 멋과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면서도 현지 국립무용단과의 협연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주재국 문화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획한 것이다. 4월 말 발생한 의류공장 붕괴사고로 1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방글라데시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공연 앞부분을 애도와 묵념의 시간으로 할애한 것도 그 때문이다.
두 나라의 반응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지난해 ‘대장금’의 히트로 한국 드라마 열풍이 불기 시작한 스리랑카 공연에는 대통령 부인과 주요 각료가 대거 참석했다. 이틀간 초만원이었고, 주요 방송국을 통해 지금도 재방송이 나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한류 확산도 눈에 띈다. 현지 미디어의 파급력을 공공외교의 최종 병기로 활용하겠다는 최종문 스리랑카 대사의 전략이 주효했다.
방글라데시의 이윤영 대사는 한국 문화를 최상류층이 향유토록 노력하고 있었다. 여론 주도층이나 영향력이 큰 인사들을 상대로 공공외교를 펼쳐 한국의 가치가 일반 대중에까지 확산되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두 번의 공식 공연 외에 방글라데시 상위 5%들의 모임인 ‘굴샨클럽’ 특별공연도 호평을 받았다.
‘착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착한 방법’을 써야 한다. 외교부는 현지 관습과 문화적 특성, 외교 관계 등을 고려해 현지 재외공관이 구상한 맞춤형 공공외교를 권장하고 있다. 본국에서는 ‘원칙’만 얻고 방법은 현지 공관이 찾아낸 ‘코리안 루트’를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현지에서 한 땀 한 땀 떠놓은 인적 네트워크에 한국의 매력을 실어 주재국 국민들의 가슴속으로 스며들도록 하는 방법이다. 꽃을 팔려고 서두르지 말고 먼저 향기를 맡게 하라는 것이다. 마음이 오면 몸이 오고, 몸이 오면 생각도 따라 오게 마련이다.
한국은 침략의 원죄(原罪)가 없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원조도 하지 않는다. 기적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드문 나라이기도 하다. 스토리가 있는 나라인 것이다. 스토리는 공공외교 선진국의 좋은 자산이다. 한류 불모지로 여겨지는 서남아에서 공공외교 강국의 꿈이 이제 막 영글어 가고 있다. ―다카(방글라데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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