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김화성]풀꽃나라 들꽃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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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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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백합 필 적에∼♪.” 가곡 ‘동무생각’의 노랫가락이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새뜻한 5월. 천지가 온통 우꾼우꾼 흥성거린다. 들판의 방죽 물이 차란차란 일렁인다. 무논엔 어느새 푸른 앞산이 떠억 가부좌를 틀고 들어앉았다. 명지바람은 슬며시 논물에 구름다발을 한 짐 부려다놓고 사라졌다. 물에 어린 구름발이 조팝나무꽃숭어리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청라(靑蘿)는 ‘푸른 담쟁이덩굴’이란 뜻이다. 1920년대 대구동산의료원 남쪽 언덕은 풋풋한 청춘들의 몽마르트르 언덕이었다. 그곳엔 온통 담쟁이로 뒤덮인 기독교 선교사 사택이 있었고, 젊은이들은 자연스레 그곳을 ‘청라언덕’이라 부르며 데이트코스로 삼았다. 당시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작곡가 박태준(1901∼1986)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앵두꽃 여학생과의 청라언덕 만남을 애타게 꿈꿨지만 그것은 끝내 가슴앓이 짝사랑으로만 남았다.

이팝나무 하얀 꽃이 우우우 돋았다. 김 모락모락 고봉밥처럼 탐스럽고 자르르하다. 남쪽에선 이미 이팝나무 꽃눈개비가 팝콘처럼 흩뿌려져 바닥에 답쌓이고 있다. 꽃의 새물내와 잎사귀의 풋내가 상크름하다.

문득 천연기념물인 전북 진안군 평지리 삼백여 살 이팝나무들이 떠오른다. 배곯아 죽은 아이의 아버지들이 아기 무덤가에 심었다는 ‘쌀밥나무’ 뒷동산. 저승에서나마 배 터지도록 쌀밥을 먹으라며 고이고이 가꾸었다는 이팝나무 숲. 지금은 덩그마니 일곱 그루만 남아 ‘배곯았던 시절’을 말해준다.

논두렁길을 발밤발밤 걷는다. 자운영꽃 논배미가 흐드러졌다. 어찔어찔 연보라 물결이 남실바람에 파노라마처럼 출렁인다. 숯불떨기가 한순간 우우 발갛게 달아올랐다가, 바람이 잦아드는 순간 불똥 부스러기들이 사르르 사그라진다. 이제 모심기에 앞서 저 황홀한 자운영꽃밭도 하나둘 갈아엎어질 것이다. 그렇게 ‘거름꽃’이 될 것이다.

뒷산 기스락엔 노란 피나물꽃이 떼로 하늘거린다. 솜방망이풀꽃은 이울어 깃털씨앗을 맺었다. 그 옆에는 노란 미나리아재비꽃이 아우성이다. 잉크물이 흰 종이에 번진 듯한 큰개불알꽃은 여전히 성성하다. 머지않아 ‘개의 불알을 닮은 열매’가 야무지게 여무리라.

좁쌀만 한 하얀 냉이꽃, 하얀 별사탕 같은 쇠별꽃, 우산살 꽃대에 달려 생글거리는 흰 봄맞이꽃. 광대가 고깔을 비스듬히 쓰고 춤을 추는 듯한 자주색 광대나물꽃, 깜직하고 앙증맞은 꽃다지, 돌돌 말린 꽃대가 스르르 풀어지면서 방글대는 하얀 꽃마리, 꽃송이 안에 밥알 두 톨을 물고 있는 듯한 며느리밥풀꽃….

검질기고 억척스러운 풀꽃들도 보면 볼수록 사랑옵다. 땅바닥에 바짝 달라붙어 샛노란 점을 찍은 듯한 쇠비름꽃. 떼 지어 피어나는 노란 돌나물꽃. 풀밭에 노란단추처럼 점점이 박혀 있는 민들레꽃. 잘못 먹었다간 미치광이처럼 날뛰는 가지색 미치광이풀꽃. 다섯 갈래 노란 꽃잎이 바람개비처럼 빙글대는 물레나물꽃. 나비잠 자며 방싯방싯 배냇짓하는 우리아가의 노란 애기똥풀꽃….

제비꽃은 여태까지도 지천이다. 어릴 적 꽃반지 만들어 끼고 놀았던 ‘지지배배’ 꽃. 왜 하필 오랑캐꽃이라고 불렀을까. 꽃 모양이 ‘오랑캐의 길게 땋아 내린 뒷머리채를 닮아서’일까. 아니면 이 꽃이 필 때쯤, 어김없이 북방의 굶주린 오랑캐들이 쳐 내려와서 그랬을까.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오랑캐꽃/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게/울어보렴 목 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이용악 ‘오랑캐꽃’에서)

풀꽃은 자잘하다. 앉은뱅이꽃이다. 땅에 바짝 엎드려야 비로소 보인다. 허리를 구부려 자세를 낮추면 눈부신 들꽃세상이 펼쳐진다. 햐아! 푸른 풀밭에 올망졸망 은하수처럼 돋은 싸라기풀꽃들. 말갈·여진 말발굽에도 줄기차게 피워대는 제비꽃들. 사람들이 밟아도, 경운기 바퀴가 짓밟아도, 다시 자라 꽃을 피우는 질경이 보살님들.

그렇다. 풀꽃은 늘 ‘저만치 혼자’ 피어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징징대지 않는다. 집착하거나 끌탕하지 않는다. 그저 무심하게 피었다가 미련 없이 진다. 무명용사나 농부의 삶과 똑같다. 그깟 ‘봉황의 삶’이 아니면 어떤가. ‘대붕의 꿈’을 꾸지 않은들 어떤가. 빨랫줄 참새처럼 수다 떨며 살다 가면 또 어떤가. ‘저만치’ 혼자 피었다가 흔적 없이 사라져간들 무엇이 아쉬운가.

‘풀밭에서/무심코/풀을 깔고 앉았다.//바지에/배인/초록 풀물//초록 풀물은/풀들의/피다.//빨아도 지지 않는/풀들의/아픔//오늘은/온종일/가슴이 아프다.’(공재동 ‘초록풀물’ 전문)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mars@donga.com
#청라#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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