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양환]을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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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15일 03시 00분


정양환 문화부 기자
정양환 문화부 기자
건너서 아는 지인의 친구 얘기다. 나이도 지긋한데 유독 미국 의류 ‘갭(GAP)’만 즐겨 입으셨다. 애도 아니고 커다란 로고 찍힌 옷 부담되지 않냐 물으니 이리 대답했단다.

“웬걸? 그래도 ‘갑’이잖아.”

요즘 갑을(甲乙) 관계가 이슈다. 갑의 횡포, 을의 설움…. 자극적이나 공감하는 이가 많다. 살다 보면 주눅 드는 처지에 놓였던 적 대부분 있으니까.

최근 조선시대 평생 을이길 고집한 선인을 알게 됐다. 정민 한양대 교수가 2011년 쓴 ‘삶을 바꾼 만남’(문학동네)이란 책에서다. 스승인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제자 치원 황상(1788∼1870)의 고귀한 인연을 다룬 멋진 작품. 허나 저자 의도와 달리, ‘갑을’ 잣대를 들이댄 건 읽은 놈 심성이 꼬여서다.

방귀 낀 김에 쭉 삐딱하면, 황상은 태생부터 을이었다. 시골 아전의 자식이니 봉건사회에서 대성하긴 글렀다. 오죽하면 귀향 온 죄인인 다산에게 글을 배웠겠나. 사대부라면 나중에 ‘갑 커뮤니티’ 진출에 누가 될까 꺼렸을 게다.

스승에게도 한결같이 을이었다. 정약용에게 배우고도 등진 이 숱했으나 그만은 의리와 본분을 지켰다. 초서(抄書·책의 중요 부분을 옮겨 씀)에 치중하란 조언을 칠순 넘어서까지 따랐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엔 자제에게도 극진했다. 치원에게 다산의 가르침은 금이고 옥이었다.

단 하나, 스승 뜻을 거스른 게 있었다. 도통 과거를 응시하지 않았다. 황상의 재능이라면 뭐가 되어도 됐을 텐데, 스스로 을의 삶을 자처했다. 그의 꿈은 탁한 세상을 피해 조용히 사는 ‘유인(幽人)’이었다. 스승이 모의고사로 짓게 한 부(賦·한자 여섯 자로 한 글귀씩 짓는 글)에서 열여덟 소년은 탈속의 행복을 노래했다.

“천지의 기운이 드넓게 퍼져/ 허공에 춤을 추며 뒤섞이누나/ 산비탈 타고서 솟아올라서/ 푸른 하늘 끝까지 내달린다네 … 밭두둑서 겨자 싹을 따가지고 와/ 뜨락에서 약 모종을 바라본다네/ 이미 곳을 얻어서 즐거워하니/ 내 장차 세상 피해 숨어 살리라.”

누구나 황상처럼 살긴 어렵다. 을보단 갑이 되고픈 욕망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을로 자신을 낮춰도 이만한 품격을 갖추면 갑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치원은 공부와 인성에서 ‘슈퍼 갑’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갑을의 칡넝쿨을 을의 수양 부족 탓으로 떠넘기면 곤란하다. 세상이나 조직이 만든 저울을 개인에게 책임 돌릴 순 없다. 다만 갑입네 거들먹거리는 분들, 상대가 당신네보다 훨씬 상질일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시라. 하긴 그걸 알 만한 인격자라면 첨부터 갑을 운운하는 소리 나오게도 안 했겠지.

깜냥은 병정(丙丁)쯤 되나, 행여 누구에게 유세 떨진 않았는지. 나부터 반성하련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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