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의 3·1절 기념식 기념사는 이례적이었다. 취임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고 말하고 일본 정부에 ‘적극적인 변화와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했다.
뭔가 사건 없이 그런 뼈 있는 말이 나올 리 없다. 짚이는 것은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였다. 단시간 회견이었지만 박 대통령은 일한 우호관계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됐다.
하지만 그것뿐이었을까. 아소 부총리는 역사에 일가견이 있고 당당히 “역사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 “남북전쟁에 대한 해석은 미국인이라도 다르다”고 말해 왔다. 그런 아소 부총리가 잠자코 있었을까.
상상이긴 하지만 두 사람이 벌인 ‘논쟁’의 연장전이 3·1절 대통령 기념사였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은 매우 둔감했다. 4월 21일 춘계대제 때 각료 3명이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했다. 그중에 아소 부총리도 있었다. 그 결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방일이 중지됐다.
한국 측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아베 정권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행사를 정부 주최로 하지 않고 아베 총리 자신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은 것은 한국에 대해 정치적으로 배려한 것이었다. 양국 정부 간에는 그만큼 큰 인식차가 존재하고 그게 아베 총리의 ‘침략의 정의’ 발언을 낳게 했다.
그런데 윤 장관의 방일 중지는 단순한 외교적 항의에 그치지 않고 중요한 전략적 결정의 출발점이 된 것 같다. 한국 외교는 ‘미일한’ 협력에서 ‘미중한’ 중시로 전략적 이동을 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무대가 된 것이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었다.
5월 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일본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또 8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국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역사에 눈을 감는 자는 미래를 볼 수 없다”며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발단이 무엇이든 한미 정상회담과 미 의회 연설에서 일본을 비판하고 그 충격을 바탕으로 일본의 양보를 강요하는 만만치 않은 스타일의 외교다. 정권 출범 때 그런 외교를 전개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외교는 전두환 정권 출범 시 대일 외교와 닮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큰 시대적 변화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중국이 대국으로 위상을 강화했다. 박 대통령은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을 비판하고, 이를 이유로 은근히 중국 중시 외교로 전환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미국과 거리 두기’이기도 하다.
이는 명백히 일본 외교의 실패다. 하지만 이를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외교의 성공일지, 아닐지도 불분명하다. 한국의 전략적 전환이 불필요하게 중국에 용기를 심어줘 동아시아에 불필요한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조만간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방문에서도 박 대통령은 또다시 일본을 비판할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아베 외교에 대한 비판 이상의 광대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일한 정상회담은 언제 개최할 수 있을 것인가.
또 대일 비판을 어떻게 수습할지도 어려운 문제다. 다행히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라는 최고의 파트너가 등장했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일미한 전략적 협력을 실현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비판받는 아베 총리와 아소 부총리가 그런 큰 변신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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