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하순명]촌지와 선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6일 03시 00분


매년 스승의 날(5월 15일)이면 그 옛날 학생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우리 반 친구 몇 명과 저녁마다 선생님 댁에서 공부를 했는데 요즘 말하는 과외비 같은 것을 낸 기억이 없다. 늘 미안해하시던 어머니가 달걀 한 꾸러미를 갖다 드리라고 했지만 나는 그것마저 겸연쩍어 전해 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선 한 번도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중학교 3학년 스승의 날엔 담임선생님께 담배 다섯 갑을 포장해서 드렸는데 정말로 고마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찮은 선물에 감사할 줄 알던 그때의 교사들은 지금 교사들보다 실력은 부족했을지 모르나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엔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 수당도 없었으나 밤늦게까지 영어와 수학을 지도하는 교사들이 있었다. 교사와 학생은 사랑으로 이어졌으며 학부모와 교사 사이가 인간의 정으로 맺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스승의 날 행사를 보면 요즘 학교 교육의 실상을 알 수 있다. 얼마 전까지는 학생회가 주관하여 선생님들의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고, 손수건 양말 같은 소박한 선물을 선생님께 드리는 등 사제지간의 정이 오갔다. 또한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쓰인 오색 테이프가 쏟아지던 그런 날 아침이면 교정엔 온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형식적인 행사라도 하려고 하면 학교 예산으로 꽃을 사고 학생들에게는 달아주는 역할만 하게 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 학교가 스승의 날이면 아예 학부모 출입을 금지하고, 스승의 날 전후에는 교사 본인이 구입한 물건도 오해를 받을까봐 들고 퇴근할 수 없다.

학교는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 세상이 변한다 해도 어른과 스승을 공경하고 친구 간에 우애가 있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국가에 충성하는 사람을 기를 수 있는 교육환경을 국가는 만들어 줘야 한다. 어쩌다 스승의 날 학교 예산으로 꽃을 달아주는 기이한 현상이 생겨나고, 사랑이 담긴 작은 선물까지도 신고하는 차갑고 삭막한 세상이 되었는가.

스승의 날을 맞아 사제 간의 참사랑이 무엇인지, 학부모와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모두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하순명 전 교사
#스승의 날#촌지#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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