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도화선 속, 꽃을 몰아가는 힘이 푸른 내 나이 몰아간다, 나무뿌리 시들리는 힘이 나의 파괴자다. 하여 말할 수 없구나, 허리 굽은 장미에게 내 청춘도 똑같은 겨울 열병으로 굽어진 것을.
바위틈으로 물 몰아가는 힘이 붉은 내 피를 몰아간다, 요란한 강물 말리는 힘이 내 피를 밀랍처럼 굳힌다. 하여 말할 수 없구나, 내 핏줄들에게 산(山) 샘물에 똑같은 입이 빨고 있는 꼴을.
웅덩이 휘젓는 손이 뻘모래를 움직인다, 부는 바람을 얽매는 손이 나의 수의(壽衣) 돛폭을 감는다. 하여 말할 수 없구나, 매달린 사람에게 형리의 회무덤이 내 진흙으로 만들어진 꼴을. 시간의 입술이 샘 머리에 거미처럼 빨아댄다. 사랑은 뚝뚝 흘러 모인다, 그러나 떨어진 피가 그녀의 상처를 달래리라. 하여 말할 수 없구나, 기후의 바람에게 시간이 별무리 둘레에 하늘을 재깍거려 놓은 꼴을. 하여 말할 수 없구나, 애인의 무덤에게 내 홑이불에 꼭 같은 굽은 벌레가 기어가는 꼴을.
화르르 타들어가는 도화선처럼 맹렬한 생명력으로 싱싱한 식물의 푸른 줄기! 꽃대마다 팡팡 폭발하듯 꽃들이 피어나리라. 그 시기처럼 한창 푸른 나이의 화자는 제 몸에 차오르는 생명의 고양감이 곧 죽음으로 몰아가는 힘이라는 걸 깨닫는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걸. 시간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실어 나른다는 걸. 그 별로 유쾌할 것 없는 사실을 시인은 장렬하고 생기 넘치는 시구로 설파한다.
인간의 힘으로 거스를 수 없는, 휩쓸려 갈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가령 시간, 죽음, 또 정념도 그렇다. 그것이 나를 움직이지, 내가 그것을 움직일 수 없는 것.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한다. 딜런 토머스는 그런 것들의 무정한 드라마를, ‘다시 본디 상태로 돌이킬 수 없는’ 그 비가역성(非可逆性)에 황망해하고 분개하며, 집요하게 쫓아서 밝히는 시인이다.
시간은 젊음이나 사랑이나 따뜻함이나, 이런 좋은 것들을 파괴한다. 하지만 나쁜 것들도 파괴한다. 그래서 우리는 몹시 힘들 때면 가만히 중얼거린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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