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절에는요 여자들이 시렁 위에 얹힌 작지만 앙칼진 칼 하나씩 손에 들고 나오는데요 여자들이 칼을 들고 설쳐도 암말 못하는 건 지천에 내걸린 풋것들을 오살지게 베어다 서방과 새끼들을 거두기 때문인데요 이 시절에는요 세상 모든 여자들은 코밑이 거뭇해지고 팔뚝 속에 알이 차올라서는 지천에 돋는 풋것들이 아까워라, 아까워라 저도 모르게 들판과 한판 엉겨붙게 되는데요 난생처음 억세디억센 수컷이 되는데요 가끔씩 그 독한 칼날에 논배미가 잘리고 칡뿌리가 잘리고 수맥이 잘리기도 하는데요 이 시절 여자들은요 푸줏간 안주인이 내걸린 고기들을 슥슥 잘라가듯 이 나무 이 바람 이 구름을 훌훌 베어 망태기에 담아서는 종다리처럼 지저귀며 언덕을 넘어가는데요 하늘도 암말 못한다는데요
산과 들에 풋것들이 지천으로 돋아나는 봄날, 망태기 가득 나물을 캐는 건강한 여인들을 그린 풍경으로만 읽어도 썩 호쾌하다. 그런데 이 시에서 ‘이 시절’을 자연의 계절로만 읽으면 좀 아깝다. 자연 속에서 나물 캐고 뛰놀던 어릴 적 기억을 현재의 시대상(時代相)으로 끌어올리는 시인의 힘! 자연을 공간 배경으로 삼으면 시에 힘이 생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시인의 기량이다.
여자가 결혼을 하면 집안에서 살림이나 해야지 직장에 다니면 흉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80년대부터는 신붓감을 물색할 때 직업이 뭔지 은근히 묻기 시작했고, 90년대에는 여자가 맞벌이를 안 하면 남편이나 시댁 어르신이 무시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급기야 현재는 당연히 맞벌이다. 여자가 살림은 물론이요 경제활동도 해야 하는 게 사회적 추세다. 항구나 선착장 같은 데는 남자 인부가 많겠지만, 시장에는 여자 상인이 많다. 저임금의 생활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도 대부분 여성이다. 그이들이 갖고 다니는 가방들은 왜 그리 큼지막한지. 어떤 역경이나 고난도 썩썩 베어낼 작은 칼이 들어 있는 그 큼지막한 망태기! ‘서방과 새끼들을 거두기’ 위해 ‘코밑이 거뭇해지는’, 모든 일하는 여성들! 시인은 그들 힘의 원천인 모성성을 찬양하고, 여성성을 격려하며, 힘찬 승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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