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들은 골키퍼가 된 심정일지 모른다. 위기는 축구공과 같아 언제 어디로 날아올지 가늠할 수 없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무장한 여론은 기업에 불리한 각종 정보들을 재빨리 확산시킨다.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위기라는 공이 나만 비켜가길 바랄 뿐이다.
남양유업 영업사원 폭언으로 시작된 대리점에 대한 밀어내기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주에는 전통주 전문기업 배상면주가의 대리점주가 밀어내기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감스럽게 두 기업은 모두 사건이 터진 초반에는 밀어내기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비난이 확산되자 뒤늦은 사과를 했다.
위기관리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면 이들 기업의 위기 대응은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남양유업의 경우 사과의 대상부터 잘못 설정됐다. 남양유업은 9일 기자회견장에 기자들을 불러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임직원들이 일렬로 서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 자리는 기자와 국민에게 사과하는 자리였을 뿐이다. 영업사원 욕설과 밀어내기의 피해자인 대리점주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대국민 사과 이후에도 남양유업은 검찰 조사에서 사건을 부인하며 각종 의혹을 쏟아냈다. 비난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16일 남양유업 임직원들은 돌연 ‘자정 결의대회’를 열어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사과를 빨리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남양유업은 방향이 어긋난 사과로 사태를 모면하려는 인상만 줬다.
남양유업은 사건 발생부터 대국민 사과까지 1주일이 걸렸다. 배상면주가는 3일 걸렸다. 식품업계 관계자들조차 이번 사태의 처리 속도가 너무 늦었다고 입을 모은다. 각종 먹거리 안전사고를 자주 경험해온 식품업계는 다른 업종보다 위기에 대한 대응 시스템이 잘 갖춰진 걸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가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먹거리 안전사고에 대해서는 실무진이 나름의 시스템을 가지고 빠른 대응을 해왔다”며 “반면 최근 발생한 불공정 거래 행위는 실무진이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결국 기업 오너 경영인의 의지 문제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배우 김혜수 씨의 대처법은 위기 대처에 갈팡질팡하는 기업들의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김 씨는 3월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당일 표절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대학원 석사학위까지 반납하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단 한마디 변명도 늘어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학위 반납은 대중도 예상하지 못했다. 신속함과 진정성, 여기에 의외성까지 갖춘 사과를 통해 김 씨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사과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면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렁은 깊어질 뿐이다. 언제 어디서 위기가 터질지 모르는 기업에 사과의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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