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하태원]미얀마 지도자, 47년 만의 공식 訪美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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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들 사이에 ‘냉탕(冷湯)’이란 은어가 있다. 내부적으로는 ‘특수지’라고 부르는데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생활이 너무 불편해 다들 가기 싫어하는 험지(險地)를 뜻한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콩고민주공화국 수단 등지보다는 좀 낫지만 미얀마 역시 ‘추운 곳’이었다. 그러던 미얀마에 훈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11년 3월 테인 세인이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현지 대사관 표현을 빌리자면 ‘가장 뜨는 곳’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했다. 1주일이 멀다하고 대기업 투자단, 국회의원, 공무원, 언론인, 학자, 관광객이 방문한다.

▷괄목상대(刮目相對)의 비결은 50년 군사 통치 종식에 이은 개혁·개방이다.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을 풀고 자유선거를 실시했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수용했다. 미국이 화끈하게 반응했다. 1억7000만 달러 지원과 관계정상화를 약속하더니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옛 수도 양곤을 직접 방문했다. 유럽연합(EU)도 경제제재를 풀어 미얀마 상품이 전 세계로 수출될 수 있도록 빗장을 풀어줬다. 연간 외국인직접투자(FDI) 액수가 400억 달러라는 것은 미얀마의 달라진 위상을 웅변한다. 민주화 이전 12년 투자액은 전부 합쳐도 85억 달러밖에 안됐다.

▷미얀마의 봄바람을 타고 세인 대통령이 미얀마의 지도자로는 무려 47년 만에 미국을 공식방문 중이다. 유엔 총회 등에 참석하기 위해 미얀마 지도자가 미국 땅에 발을 들여 놓은 적은 있지만 1966년 이후 백악관 정상회담은 없었다. 미국 정부는 1989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정통성 없는 정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버마’라는 옛 국명을 고집해 왔으나 이도 포기하고 미얀마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2년 안에 일어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미얀마의 해빙을 보며 핵 겨울의 혹한(酷寒)이 깊어져만 가고 있는 북녘 땅에 자꾸 눈길이 간다. 온 세상이 한목소리로 미얀마의 길을 따르라고 해도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아웅산 테러사건 30주년이다. 세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을 오가는 교통편으로 우리 국적기를 택했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미얀마 지도자#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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