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5·18 정신과 희생자에 다시 상처 주는 일 없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1일 03시 00분


5·18 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을 맞아 일부 방송 출연자와 인터넷 사이트들이 5·18 때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불렀다. 지난주 방송에 출연한 한 탈북자는 “5·18은 북한군 1개 대대(600명)가 침투해 광주 시민을 사살하고 선동한 폭동”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방송에서도 한 탈북자가 자신이 광주에 남파됐던 북한 군인이었다고 자처하며 “5·18 때 머리 좀 긴 애들은 다 북한 전투원”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5·18과 5·18 희생자들을 비하하는 글과 패러디물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5·18 희생자 유족과 기념단체, 정치권, 광주시 등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며 ‘5·18 역사왜곡대책위원회’(가칭)를 구성해 공동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이미 오래전에 결론이 난 낭설이다. 5·18이 일어난 직후 계엄사령부는 경고문을 통해 ‘소요는 고정간첩 불순분자 깡패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밝혀 ‘북한 개입설’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러나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 씨는 1995년 군사반란 혐의로 수사를 받으며 “다소 과장된 점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5·18 때 광주 시민군과 외신기자들 사이의 통역을 맡았던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도 최근 채널A에 출연해 “시민군은 아침에 반공 구호를 외치고 시위를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간첩으로 의심되는 수상한 사람을 잡아 백기를 앞세운 뒤 진압 군인에게 넘겨줬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밝혔다. 시민군이 만든 빛바랜 전단에는 ‘김일성은 순수한 광주의거를 오판 말라’는 글귀도 들어있다. 북한의 개입을 경계했다는 증거다.

북한 쪽에서도 ‘북한군 개입설’이 허위임을 입증하는 자료와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강성산 전 북한 총리의 사위로 1994년 남한으로 망명한 강명도 씨는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는 책을 통해 “5·18 때 북한 측이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진압되는 바람에 대남공작원을 투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어제 채널A에 출연한 그는 “북한의 김일성은 5·18을 적화통일의 호기로 보고 개입하려고 했으나 기회를 놓친 뒤 나중에 후회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5·18 때 개입하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광주 시민군 안에 600명의 북한군 1개 대대가 들어 있었다면 외부에 바로 드러났을 것이고, 계엄군 역시 즉각 병력을 투입해 대응했을 것이 분명하다. 2011년 유네스코가 5·18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한 것도 국내외 검증을 거쳐 민주화운동으로서의 5·18 정신을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일부 탈북자의 일방적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사실처럼 확산시키는 것은 묵과하지 못할 무책임한 자세다.

‘북한군 개입설’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이 인터넷상에서도 그럴듯하게 통용되고 있는 것은 역사인식의 부재와 협소함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일이다. 5·18은 비상계엄 확대와 김대중 씨의 강제 연행에 반대해 시민과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자 신군부가 유혈 진압하면서 일어난 것이 사건의 본질이다. 5·18 민주화 정신에 대한 모든 음해는 중단돼야 한다. 5·18 희생자 유족 등 평생의 한을 안고 살아가는 관련자들의 상처를 다시 헤집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화운동은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일부분으로 국민 모두가 존중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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