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동안 부도를 낸 중소기업에 연대보증을 섰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11만3830명에 대해 구제에 나선다. 이들의 신용불량자 딱지를 떼어 주고 금융회사에 지고 있는 연대보증 빚도 40∼70% 탕감해 주기로 했다. 1997년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재난을 맞아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는 와중에 연대보증으로 묶여 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조치다.
그동안 이들은 자기 이름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불편을 겪었다. 금융기관에 남아 있는 이들의 연체 정보가 삭제되면 은행 계좌를 다시 열 수 있고, 신용카드도 만들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패자 부활의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하다. 스스로 재기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성실하게 빚을 갚으려고 노력해 온 사람들을 구제한다면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문제도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금융기관에 진 빚은 모두 13조2420억 원으로 집계된다. 정부는 연대보증 채무액이 10억 원 이하(원금 기준)일 경우에 한정해 채무를 부분적으로 탕감해 줄 방침이다. 아울러 이들은 고용노동부의 ‘취업 성공 패키지’ 사업과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소상공인 창업학교’로부터 창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7월 1일부터 연말까지 연락이 가능한 대상자에게 개별적으로 통보하고 별도의 신청도 받을 계획이다.
이번 조치는 금융회사에서 신용으로 빌린 개인 빚을 1억 원 한도에서 탕감해 주는 국민행복기금과는 별도로 이뤄진다. 이에 따라 정부가 부채 탕감 대책을 남발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국민행복기금과 마찬가지로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결국엔 정부가 갚아 준다’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확산될 경우 은행 돈을 빌려 쓰고도 나 몰라라 하는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 수 있다. 무분별한 부채 탕감은 형평성 논쟁을 불러 다른 쪽에서도 탕감 요구가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정부는 무엇보다 무자격자들이 이번 조치의 혜택을 받는 일이 없도록 대상자를 선정하는 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이들의 부실 채권을 갖고 있는 금융회사로부터 6조9000억 원의 채권(나머지 6조3000억 원은 이미 자산관리공사가 보유 중)을 원금의 0.25%인 173억 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은행들은 부실로 분류한 이들 채권을 자산관리공사에 헐값에 넘기게 된다. 이 부담은 고스란히 은행과 공기업인 자산관리공사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당시 드러났듯이 은행이 부실해지면 결국에는 국민 세금으로 막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기준이 투명하지 못하거나 형평성 논란이 생기면 독약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도덕적 해이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