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그의 이름 석 자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았다. 며칠 전 사석에서 만난 어느 정치인의 한마디에 수많은 보도로 둔감해진 신경이 곤두서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사람, 아직도 기자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랬던 것 아니겠어?” ‘툭’ 던진 그의 말에 마치 희롱이라도 당한 듯 모멸감인지, 수치심인지 모를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정치부 기자 30년, 정치 전문 칼럼니스트…. 그는 지난해 가을 펴낸 저서 ‘국민이 정치를 망친다’에서 자신의 주요 경력을 이렇게 소개한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는 그가 무슨 꿈을 꾸며 스물여섯 되던 해 기자를 직업으로 택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분명한 건 그가 내세우는 ‘정치부 기자’로서의 자부심과 그가 속했던 언론계 내부의 평판에 큰 간극이 있다는 사실이다.
내 주변의 많은 언론인들은 그가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맡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글을 쓰거나 집권세력 측 요로에 의견을 전달한 이들도 숱하게 있었다.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은 그의 경우엔 해당되지 않았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어떤 사람의 사적인 부분, 특히 성(性)과 관련된 습관까지 속속들이 알기란 쉽지 않다. 그의 공직 임명에 반대했던 이들이 그의 성윤리까지 걱정했던 것도 아닐 게다. 사실 그놈의 술 때문에 벌어진 실수인지, 의도된 추행인지 사건의 실체도 명확하진 않다.
그럼에도 일이 터지자 “그럴 줄 알았다”는 탄식이 현직 기자들 사이에서 나온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더러는 “차라리 잘됐다”는 자조 섞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더 큰 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는 불안감의 방증이었다. 왜 그랬을까. 한마디로 언론계에선 그를 균형감을 갖고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기자, 즉 저널리스트로 인정하는 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러니 일각에서 “기자 출신 어쩌고…” 하며 도매금으로 취급하는 상황이 못내 씁쓸하다. 그보다 더 답답한 건 아무리 항변해 봐야 ‘누워서 침 뱉기’로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너는 얼마나 깨끗한데?” “너도 갑질하고 다니지 않았냐?” 등의 힐난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쯤에서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고 싶다.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만찬에서 대통령은 “전문성을 보고 했는데…”라며 ‘그런’ 인물인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전문성을 보고 썼을 뿐 ‘그런’ 도덕적 문제, 불미스러운 문제를 일으킬 인물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바로 여기에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대통령과 일반인들의 인식 차이가 있다고 나는 본다. 맞다. 그는 ‘전문가’였다. 스스로 미국의 전설적인 저널리스트인 월터 리프먼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고 있다고 말해 왔지만, 특유의 날선 표현으로 특정 진영의 편에 서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고 무력화하는 데 앞장선 스피커라는 점에서 그는 대선 기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스페셜리스트’였다. 선전 선동에 탁월한 ‘그런’ 스페셜리스트였기에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이 사건도 점차 국민 관심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언론 보도에 항의하듯 신문지로 아파트 거실 창문을 도배한 채 10여 일째 두문불출하고 있는 그도 법적 문제가 마무리되면 전문가답게 ‘그날의 진상’ 비슷한 글을 내놓으며 창살 없는 감옥에서의 탈출과 화려한 재기를 모색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찜찜함은 남는다. 대통령은 취임 전날에야 그를 대변인으로 정식 임명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를 천거했다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너도나도 “대변인을 시키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대체 그는 왜, 어떻게 임명됐던 것일까. 청와대가 인사 시스템을 보완하겠다고 나섰지만 뭔가 핵심적인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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