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미루어놓게 되는 말이 있다. 하려다 말고, 하려다 말고, 하도 망설여 잠깐 잊어버리기도 하다가 거듭 떠오르는 말. 그 말을 못 꺼내서 끙끙 앓게 되는 말, 숨겨진 말. 화자도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말’이 있단다. 무슨 말인지 독자는 알 수 없다. “내가 재작년에 빌려준 돈 좀 갚아줄 수 없겠니?” 이런 말일까? 이 말처럼 하기 힘든 말도 없을 테다. 하지만 미루어 생각건대 화자의 입술에 맴도는 말은 좋은 말인 듯하다. ‘말갛고 따뜻한 새알’ 같은 말. 가령 사랑의 고백.
‘못다 한 말’을 가슴에 품고 있는 화자, 길을 가다 갈대숲 사이 개개비 둥지를 본다. 화자는 그 둥지에 자기 심정을 투사한다. 우산도 이불도 비닐하우스도 없이, ‘천둥과 바람과 눈보라’를 다 맞고 있으리. 둥지 안에는 어쩌면 새알이 있겠지. 새알? ‘부드럽고 말갛고 따뜻한 새알!’ 새알은 작으니까 그 심장도 조그마할 테지. 작디작은 심장이 새알 속에서 두근두근 뛰고 있겠지. 문득 화자의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뛴다. ‘나의 가슴을 열어젖히면’, 말이 알을 깨고 아기 새처럼 뿅 튀어 나오리! ‘당신에게 미루어놓은 나의 말’을 꺼낸다면, 마침내 사랑을 고백한다면! 상상만으로도 화자는 작은 새처럼 숨이 가쁘네.
매력적인 시다. 하고 싶은 말을 감추고 있는 사람의 심정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은근하고 진진하다. 씹을수록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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