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생활을 접고 귀농한 지인의 시골집을 방문했다. 농부라기에는 너무 어설퍼 보이는 그에게 첫 농사의 목표를 물었더니 초보 농부 대답이 “그냥 본전만 찾으면 된다”고 했다. 목표가 소박하니까 실망할 일 없겠다며 안심하고 돌아왔다.
“어때요? 목표는 달성할 것 같아요?”
두어 달 후에 물었더니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목표 수정했어요. 반본전으로요.”
본전은커녕 반본전 하기도 어렵겠다는 그의 고백에 한바탕 웃었지만 농사가 얼마나 만만치 않은가를 실감했다. 그 이후 걱정 반 농담 반으로 “반본전은 될 거 같아요?”라고 묻곤 하지만 올해 3년차 농부인 그의 반응이 아직도 시원치가 않다.
반면, 10년 전부터 슬슬 귀농이 아닌 귀향을 준비하고 있는 내 어릴 적 친구가 있다. 친구는 아직 정년퇴직이 7, 8년 남았지만 10년 전에 벌써 고향인 온양온천 근처에 아주 싼값의 땅을 샀다. 그 땅은 마을을 지나 막다른 곳까지 길 아닌 길로 수백 m나 들어간 후미진 곳이라서 전기도 수도도 없었다.
그러나 친구는 서둘지 않았다. 인천에 살면서 주말마다 들락거리며 하나하나 자기 손으로 일구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던 땅이 조금씩 밭의 모양을 갖추어 가더니 그 밭에서 나온 배추로 김장을 담갔다고 했다.
전기도 끌어왔고, 몇 년 동안 집짓기 공부를 해가면서 남편과 함께 작은 친환경 집도 지었다. 지금은 먼저 퇴직한 남편이 시골집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있다. 내다 파는 게 아니라 그저 식구들 먹고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친구가 심은 과수나무가 열매를 맺고 주변의 야생화와 어울려 소박하고 정겨운 터전이 되어 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친구는 정년퇴직을 하면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집으로 내려가 오래 꿈꾸어 온 전원생활을 본격적으로 즐기게 될 것이다. 시행착오의 기간은 다 끝났으니 말이다. 결국 귀농이든 귀향이든 오래 준비해야 성공한다.
농사라곤 지어본 적이 없는 도시인들이 툭하면 “에이, 다 때려치우고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라고 말한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도시인들에게 농사는 반본전 찾기도 어려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오죽하면 경제성과 무관하게 쉬엄쉬엄 농사짓는 친구마저도 “빨리 겨울이 왔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고 말할까. 뽑아주고 돌아서면 금세 다시 무성해지는 풀이 무섭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농부들은 풀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결코 도시인들의 생존경쟁 못지않은 서바이벌 게임이다. 그나저나 반본전이 목표였던 그분, 올해는 꼭 본전을 찾는 진짜 농부로 올라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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