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국에 갈등 시한폭탄, 방치하면 사회통합 어렵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5일 03시 00분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주민과 한전 간의 갈등,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둘러싼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재청 간의 갈등처럼 해결이 쉽지 않은 현안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국무조정실이 중점 관리 대상으로 꼽은 갈등 과제만도 69개나 된다. 주로 지역 갈등들만 추린 것으로, 지역과 무관한 정책 갈등까지 포함하면 수백 개나 된다. 모두 ‘시한폭탄들’이지만 뇌관을 제거할 방법이 마땅찮다는 게 문제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는 사회 자체가 어찌 보면 갈등의 덩어리다. 계층의 다원화, 이익의 다양화가 심화하고 민주주의 의식까지 높아져 갈등의 종류는 많아지고 강도는 심해지는 추세다. 가치와 이익이 충돌하는 현대의 갈등은 수천 년 전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내는 식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갈등은 잠복된 사회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순기능 역할도 한다. 그러나 오래 방치하면 사회통합을 해친다.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 시민단체를 포함한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의 지혜를 모을 수밖에 없다. 댐이나 송전선로 건설, 군 관련 시설이나 교도소 이전 등 유사한 갈등 사례들은 특별법 제정 같은 ‘표준 모델’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사자들이 대화와 양보를 통해 타협책을 만들도록 유도하되 그것이 힘들면 제3자가 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금도 국무총리실 산하의 행정협의조정위원회처럼 정부에 16개의 갈등 조정기구가 존재하지만 대부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은 갈등 조정기구에 전현직 판사들까지 참여해 법정 다툼으로 가기 전에 분쟁을 조정하고, 영국은 갈등 현안을 접수해 관련 기구에 연결해주는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갈등 조정기구는 전문성도 떨어지고, 홍보 부족으로 그런 기구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갈등 조정기구마다 권한과 위원 선임 절차, 운영도 제각각이다. 임동진 순천향대 교수(행정학)는 “중앙에 이 기구들을 종합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교육 등을 통해 갈등 조정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각성도 필요하다. 각종 선거에서 무분별하게 공약을 남발해 갈등을 양산하는 행태부터 버려야 한다. 갈등을 만드는 정치가 아니라 갈등을 푸는 정치를 해야 한다.
#밀양 송전탑 건설#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사회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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