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기에 대하여 할리우드 같으면 60만 불 정도의 연기료를 받을 수 있을 터인데 나는 연기료 대신에 벌을 받게 됐소.” 1957년 늦여름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가짜 이강석 사건’의 장본인 강성병 씨가 재판을 받기 전 기자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강 씨가 연기한 이강석은 누구인가. 당대 실력자인 이기붕의 아들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로 온갖 권세를 누렸다. 강 씨가 “나, 이강석인데…”라고 하자 영남의 한 시장은 “귀하신 몸께서 어떻게 혼자 오셨습니까”라며 머리를 조아렸다고 한다.
▷강 씨의 첫 공판이 열렸던 대구지법에는 호기심 가득한 방청객이 몰려들어 경찰이 동원될 정도였다. “이강석이 부러워 행세한 것인데 경찰서장들이 극진한 대접을 함에 새삼스레 대한민국 관리들의 부패성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 “(21세인) 저를 ‘영감님’이라고 불렀고, 개중에는 ‘각하’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디다.” 강 씨의 진술로 경주 영천 안동 등지의 경찰서장들이 가짜 이강석을 어떻게 환대했는지 하나둘 드러나자 법정에서는 연거푸 폭소가 터졌다.
▷강 씨 사건이 터진 후 몇 달이 지난, 이듬해 1월 23일 동아일보 4컷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은 이른바 ‘경무대 똥통 만화’를 실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똥지게를 진 2명이 다른 똥지게꾼에게 ‘귀하신 몸 행차하시나이까’라며 허리 숙여 절 한다. 고바우 영감이 누구냐고 행인에게 물어보니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서 똥치는 분이오’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강 씨 사건은 비극으로 끝났다. 이강석은 1960년 4·19혁명 직후 권총자살을, 10개월을 복역한 강 씨는 1963년 음독자살했다.
▷이보다 훨씬 유쾌한 ‘가짜 귀하신 몸’이 지난주 프랑스 칸영화제에 나타났다. 프랑스인 드니 카레 씨가 싸이처럼 차려입고 고급 파티를 돌아다니며 특급대우를 받았다. 가짜 싸이와 사진 한번 찍으려고 각국 유명 인사들이 그야말로 줄을 섰다. 국내 방송 인터뷰에서 카레 씨는 자신이 한국에서 태어나 세 살 때 프랑스로 입양됐다고 했다. 이번 해프닝은 카레 씨가 그를 버렸던 고국으로부터 받은 첫 혜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