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 특사를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6자회담 재개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던 북한이 어제 ‘핵과 경제개발의 병진(竝進) 노선’을 재차 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의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병진 노선의 전략적 위대성을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하는 형식을 취했다.
북한의 비핵화 거부 행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시 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최룡해 특사를 압박했지만 북한은 비핵화의 ‘비’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관련 당사국과의 대화에 응하겠다고 한 북한의 약속에서 진정성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북한이 6자회담을 언급한 것은 핵을 개발할 시간을 더 끌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필요조건인 북한의 추가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 선언, 영변 우라늄농축 중단, 국제원자력기구 사찰 수용도 기대하기 어렵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어제 첫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소쩍새가 한번 운다고 국화꽃이 피지 않는다”며 비핵화 의지를 입증할 북한의 행동을 촉구했다.
북한은 개성공단의 완제품과 원·부자재 반출을 위한 남북 간 회담은 거부한 채 개성이나 금강산 지역에서 6·15 공동선언 기념식을 개최하자며 오히려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업체에 직접 팩스를 보내 거짓 선전을 하는 등 통민봉관(通民封官)을 하겠다는 의도다.
북한은 6·15 공동선언 기념식을 정치적 선전의 장(場)으로 활용하려고 할 공산이 크다. 북한이 일단 개성공단 협상에 응해 작은 신뢰라도 보여주지 않으면 남북 관계는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다. 통일부는 어제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북한의 태도는 진정성이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구태의연한 행태”라고 밝혔다. 민주당과 김한길 대표도 북한의 박 대통령 비난에 대해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국제사회가 북핵에 공동대응을 하며 압박하자 북한은 마지못해 대화에 응하는 시늉을 냈지만 본심은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한국과 중국, 미국이 앞장서고 일본, 러시아가 북한의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바탕으로 대북 압박전선을 공고히 해야 한다. 그나마 아직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박 대통령의 다음 달 하순 중국 방문을 계기로 대중(對中) 외교를 강화해 북한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